숙희는 다니던 회사에서의 정중한 재취업의 초대를 일단 수락했다.
그 동안 이글 파이넨셜 내부의 분란이 법정까지 번지지 않는 선에서 일단락되었고.
이글에 새로 부임한 잠정회장 즉 전 회장의 딸이 유독 수키 한만 원한다는 것이다.
단 조건은 남 캐롤라이나 주로 전근와서 아주 긴밀히 연락 주고받기를 원한다는 것.
그렇다면 그녀는 운진과 떨어져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녀가 이사하는 것이 싫다면, 즉 이글의 제의를 거절한다면, 메릴랜드 여기서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
그래서 숙희는 하워드의 제의를 어떻게 처리하나 생각해 봐야 했다. 아니.
그녀가 먼저 하워드에게 전화 연락을 취했다.
하워드는 쑤의 전화에다가 비명을 지을 정도로 반겼다.
그리고 그녀가 알아낸 것이 '옛친구'라며 화원으로 전화를 걸어왔던 남자가 하워드는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가 직접 찾아와서 내건 조건은 볼티모어 다운타운에 자리잡은 소규모 은행 하나가 아주 진취적인 일꾼들만 있어서 곧 확산되어 나갈 조짐이 많고.
이 때 한 배에 타면 은행이 확장되어 나가는 만큼 빠른 시간 내에 새로운 지점의 지점장 내지는 내근에서도 좋은 자리를 굳힐 수 있다고.
숙희는 멀리 떠나지 않아도 될 듯한 하워드의 제안에 쏠리고 만다.
그리고 그녀가 하워드에게로 끌린다는 것은 다른 뜻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가 별거하던 부인과 이혼을 완전히 끝내고 청해온 프로포즈.
그녀가 하워드가 마련한다는 자리를 찾아간다는 것은 그의 프로포즈를 받아들인다는 뜻 아닌가.
그것 역시 그녀가 운진과 헤어진다는 것이다.
그녀는 조만간 어느 한쪽을 빨리 택해서 연락을 취해야지 자칫 잘못 지연시키다가는 둘 다 놓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운진은 아직 돌아오지않고 있다.
결국 숙희는 운서에게 가장 싫은 것을 물어야 했다.
혹시 운진은 숙희 그녀가 화원에서 나가길 원하는가 하고.
"우리 운진이가 말없이 나가 버렸을 때, 숙희가 누구보다 가장 잘 알 것 아냐?"
운서의 좀 싸늘한 대꾸였다. "그 외에는 우리 운진이 걔가 왜 갑자기 집이나 가게를 비우는지 전혀 모르겠는데?"
"..."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화원을 열고 있는 걸 우리 운진이가 알면 안 좋아하겠는데?"
한편.
운진은 한달째 뉴 욬에 있다.
전에 화원에서 일하다가 헤어진 박철용을 찾아와서 술 한잔하고는 그냥 계속 있는 것이었다.
그냥 허송세월을 보낸 것은 아니고, 박을 따라 새벽 야채 시장에 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야채 시장은 새벽 한 시에 열면 보통 일곱시면 닫는다.
거기서 운진은 입 딱 다물고 날품팔이 일을 했다.
그 곳의 야채는 그가 화원에서 조금씩 묶어서 팔던 채소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무거웠다. 그것들을 추렄에서 부지런히 내려야 다음 추렄이 들어오기 때문에 숨 돌릴 틈도 없이 부려야 했다.
아마 한달 남짓 새에 어깨근육이 배는 넓어졌나보다.
운진은 야채 시장이 파하면 전에 뻔질나게 드나들던 가짜 명품 시장에 들렀다.
그 곳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은 사람 보는 눈이 매우 발달해 있다.
아닌 말로 누가 호구인가를 잘 가려내는 것이다.
멋모르고 기웃거리는 이들은 가짜임에도 불구하고 바가지를 엄청 쓰고.
거기서도 약삭 빠른 이들은 후려쳐서 원하는 값에 물건을 구입하기도 한다.
그 시장은 오후 다섯시면 완전히 닫는다.
그러면 운진은 박의 숙소로 와서 초저녁부터 잠자리에 들었다.
운진은 뉴 욬에서 인간 공부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그는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된 것 같다.
그리고 그는 숙희에게 말할 것이다.
화원은 댁이 머물고 싶으면 머물다가 떠나고 싶고 또 떠날 때가 되면 떠나도 된다고.
아닌 말로 우리가 몸 섞으며 장래를 약속한 사이도 아니고.
아닌 말로 품으로 날아든 새를 잘 보살피다가 다시 날아가려하면 보내는 거라고.
아니면, 포수는 새가 원하든 안 원하든 날아가라고 소위 쫓아낼 거라고.
'사람들이 다 당신처럼 요랬다 조랬다 기회 보고 사는 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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