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11

5-1x041 벌어지는 틈

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6. 29. 10:14

벌어지는 틈

   운진의 숙희를 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아니. 
그는 아예 그녀와 눈길을 마주치려 하지도 않는다.
숙희는 자존심을,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운진에게만큼은 버리기로 했다. 
그녀는 운진을 껴안았다. "잘못했어."
   "뭐가 또 잘못했다는 건데요?"
숙희는 저도 모르게 눈물부터 나왔다. "일이 필요해서... 전에 일했다가 그만 둔 은행들 중에서 레전씨 뱅크... 그러니까, 그 때 총책임자였던 하워드란 사람한테 어디 일자리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 부탁..."
그녀의 변명 아닌 변명은 운진이 손을 심하게 내저음으로써 끊겼다. "본론만 말하세요."
   "운진씨가 혹 보고 오해한 것이 있다면, 다르게 생각하지 말아줘. 그 때 차 안의 사람이 하워드야. 날 키-퍼슨으로 키워줬고. 한 때 시니어 키-퍼슨으로까지 밀어줬는데 내가 너무 싫어서..."
   "본론만 말해요."
   "오해 풀어... 나, 이상한 짓 한 거 없어. 나, 운진씨가 남자로는 처음이야."
운진이 숙희를 똑바로 봤다.
숙희는 운진의 손을 찾아서 잡았다. "오해 풀구. 설령 내가 운진씨가 오해 할 짓을 했어도, 그런 거 절대로 없지만, 내 마음만은 운진씨한테서 안 떠나."
   "정말이요?"
   "응. 나중에 때가 되면 나, 살아온 거 다 말할께."
   "얘기해서 우리한테 도움 안 되는 거면 말하지 마시요."
   "그러니까..." 
운진은 그제서야 숙희를 안았다.
숙희는 울음을 터뜨리며 그의 가슴을 때렸다. "못 됐어!"
운진이 그녀의 볼에다 입술을 쪽쪽 소리나게 대었다.
   "우디. 나 좀 그만 울릴래?"
   "덩치만 커다랗고 언내처럼 맨날."
   "난... 남자들이 무서워."
숙희의 그 말에 운진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한씨, 이 개새끼!

   운진은 펜실배니아의 농원에다 전화를 걸어서 노골적인 욕 단어를 섞어가며 실랑이의 통화를 벌써 얼마째 하고 있는데.
그는 그가 근 한달 간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일하는 사람들이 멋모르고 주문해서 팔지도 못하고 폐기처분한 화초에 대한 변상을 따지고 있는 것이다. 
숙희는 운서언니의 뒤를 부지런히 쫓아다녔다.
숙희는 운서언니의 귀띔이 한없이 고마운 것이다.
   "운진이한테 뭐라 했길래 쟤가 금방 풀렸네?"
   "무조건 잘못했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무슨 일이 있어도 운진씨 안 떠난다고 했어요."
   "그게 다야?"
   "일 때문에 어떤 남자를 만났는데, 그게 다라고 말했어요."
   "잘했어."
   "근데요..."
   "뭐?"
   "운진씨, 과거에 뭐 했어요?"
   "왜?"
   "가끔씩 눈 싹 돌릴 때 보면... 무서워요."
   "어쨌든... 운진이가 숙희한테 쏟는 정성에 삐끗하지마. 내 눈에 보이는 내 동생 운진이는 한국을 떠나 온 이후로 최초로, 다시 여자를 사랑하는 것 같애."
   "한국을 떠난 이후로요..."
   "쟤가 때 되면 말하겠지."
   "상처가... 컸나 봐요."
   "글쎄?... 그것도 말하고 싶으면 말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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