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11

4-1x031 숙희의 선택

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6. 28. 12:43

숙희의 선택

   숙희는 얼떨결에 따라가 본 교회였지만 썰렁했던 분위기가 오히려 인상에 남았다.
몇몇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앞을 열심히 보며 경청하던 모습이 착해 보였다. 전에 한번 운서언니에 의해 올라갔었을 때의 어수선했던 것 보다는 나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운진은 최 장로의 완강한 초대를 차마 거절 못해서 숙희를 대동하고 그의 집으로 갔다.
전처럼 영란이 홈웨어로 갈아입고 부엌에서 부산을 떨었다.
그 집 마님은 부엌과 다이닝룸을 드나들며 뭐가 그리 못마땅한지 상을 짝 찌푸렸다.
최 장로가 캔 맥주 세 개를 내왔다.
운진은 받아만 놓고 앉은 소파 주위를 그냥 둘러봤다.
그런데 영아가 저만치서 이쪽을 보고 있다가 달려왔다.
   "히어!" 영아가 티테이블 신문 밑에서 텔레비젼 리못 콘추롤을 끄집어 내어 운진에게 내밀었다.
운진은 그냥 웃으며 그러면 텔레비젼도 네가 켜라는 턱짓을 보냈다.
영아가 텔레비젼을 탁 켜더니 채널을 두어번 바꿔서는 농구 게임에 고정시켰다.
   "댈러스 이스 위닝."
   영아가 말하면서 숙희 곁에 앉았다. "배스킷볼 봐여?"
숙희는 열서너살 되어 보이는 여자애가 귀엽게 논다고 여기며 웃어주었다.
최 장로가 하나짜리 의자에 앉으며 아아 하는 신음소리를 냈다. 
   "아, 이젠 나이 먹어가니까 말야, 일요일날 교회만 다녀와도 몸이 피곤해."
   그가 목을 이리저리 굴렸다. "골프를... 다시 시작해야겠는데?"
그러면 운진쪽에서 아 골프 치세요 하는 반응이 나와야 말이 이어지는데.
운진은 최 장로를 아예 쳐다보지도 않고 삼십인치 정도 화면에서 움직이는 농구 게임을 봤다.
   "아버지 오 집사가 미스타 오 우리 교회로 다시 오는 거 아시나?"
   "아마 모르실 겁니다."
   "미스타 오가 우리 교회로 다시 오면, 아버지네도 다시 오실래나?"
   최장로가 말은 그렇게 이어가지만 그의 관심사는 온통 낯선 여인에게 가 있다.
   그가 교회를 이적한 오 집사와 틈틈히 전화 통화하는 이유가 그 집 아들 미스타 오 때문인데.
   큰딸이 미스타 오를 은근히 기다리는 눈치인 것 같아 기회를 만들어 볼까 하고 어른들끼리 친해지려고 노력하는 중인데. "옆에 아가씨는..."
최 장로의 그 질문에 숙희는 몸을 바로 했다. 그리고 그녀는 운진을 쳐다봤다.
그런데.
   "약혼녑니다." 운진의 입에서 그 말이 쉽게 나왔다.
   "약, 혼녀?"
   "녜."
   "아니... 오 집사는... 아들한테 약혼녀가 있다는 말을 안 하던데."
   "아직... 집의 부모님은 인정... 안 하시지만, 저희는 이미..."
숙희는 운진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영아가 숙희를 더 자세히 보려고 가까이 했다.
   "부모님은 인정 안 하시는데, 두 사람은 이미 약혼... 내지는 일을 저질렀다?"
   최 장로가 고개는 부엌으로 향했다. "암만 요즘 사람들이라 해도... 원."
   "물론 저희들은 양 부모님의 허락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립니다."
   "허락이 쉽게 떨어..."
최 장로의 말이 끊겼다. 
그는 큰딸 영란이 반찬 그릇을 식탁으로 내오는 것을 봤다. "암말 안 한다는 것은, 허락하지 않는다는 뜻 아닐까? 그저께도 오 집사와 잠깐 통화했는데, 암말 없던데."
   "저의 아버님 보다는 어머니의 허락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어머니의 허락..." 최 장로가 머리를 끄떡거렸다.
숙희는 조금 안심이 되었다. 
운진 그가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이야기를 더 떠벌리지도 않고, 축소하지도 않고, 양쪽 집안의 부모들이 기권하기를 기다리는 것은 맞다. 
그들이 허락하는 게 아니라 기권할 때까지. 
하지만 숙희는 그쪽으로 생각할 때마다 망설이는 자신이 참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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