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마지막 공휴일이라고도 불리우는 레이버 데이(노동절).
매년 9월의 첫 월요일.
그 날을 마지막으로 휴가철이 완전히 지나면서 모든 이들이 일터로 돌아온다.
거의 대부분의 학교들도 그 날 이후 개강한다.
"이젠 미스타 오 아저씨가 월화수목금은 학교 가고 토일만 벤더 한대?"
공희는 아까부터 손님 하나 없는 가게에서 진희와 전화 수다를 떤다. "그래두 그 미스타 오 아저씨는 장사 잘 할 거야."
한씨는 딸의 통화를 엿들으면서 입맛을 다신다.
진희가 이젠 이 가게에 절대 안 온다고.
아빠가 치근대기 때문에.
"한번만 더 해. 아빨 엄마한테 이를 거야!"
작은딸의 그 말에 한씨는 기가 팍 죽었다.
딸이 무서워서가 아니다.
공희모는 출신이 출신인 만큼 뿅 가면 그냥 막가파이다. 그리고 한씨는 한국에서 정말 알지 못하는 이유로 미국이란 데를 이민왔지만.
'미국은 늙은이들 살 데가 못 돼!'
"주중에는 학교 갔다가 삼춘네 화원일 한다구?"
공희는 집에 와서도 진희와 집 전화로 수다떤다. "남자가 꽃가게도 해. 우습다아!"
숙희는 그 후진 추렄 모는 남자를 말하나 보다 하고 말았다.
그녀는 제 방에 들어가서는 침대에 그냥 걸터 앉았다.
그녀의 방에는 정말 아무 것도 없다.
달랑 트윈 사이즈 침대 하나가 창 가에 가로로 놓였고.
반대편 벽에는 오단 짜리 체스트. 그리고 원래 집 지을 때 만든 스토리지 룸.
그녀의 방에는 그 흔한 화장대도 없다.
그녀는 화장을 거의 안 하므로 화장실 거울 앞에서 입술에 라인만 그릴 뿐이다.
그녀는 피부가 원래 좋아서 로숀 정도로만 커버해도 하얗고 뽀얀 살결이 윤이 난다.
그녀가 근무하는 은행에서 가을부터 토요일도 전면 오픈할 예정이라고 한다.
숙희는 제일 먼저 토요일 스케쥴에 들어가고 싶다고 신청했다. 그러면 주중 하루를 쉬겠느냐고 하는 물음에 그녀는 노 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집에서의 탈출이다.
이제 토요일도 일해서 근무 수당이 늘어나면 공희모의 입이 찢어질 것이다.
네가 체크 캐쉬해서 갖고 집에는 조금만 내놓지, 왜 다 주니.
한씨가 딸에게 미안한 체 그렇게 말했지만.
실상 악세사리 가게는 언제 닫을지 모른다.
그래도 숙희가 잠시 봐 줬을 때가 가장 괜찮았다고.
"인젠 그 미스타 오 아저씨한테서 암것두 못 얻어. 그니까 아빠가 뉴 욬 가야 해."
공희가 저녁 식탁에서 앙탈을 부린다. "아니면, 우리 가게 닫어."
숙희는 수저를 살그머니 내려놓고 식탁 의자에서 일어섰다. "잘 먹었습니다."
"말 끝에 어머니나 엄마라고 하면 누가 니 년 잡아먹니?"
공희모에게서 터져 나온 욕이다. "이 집에 놀러온 사람이야? 엉?"
그런데 한씨가 가만히 있다.
숙희는 부친을 가만히 내려다 보다가 공희모에게 머리를 꾸뻑해 보였다.
"나쁜 년!"
숙희의 등 뒤로 날아간 욕이다.
그래도 한씨는 가만히 있다.
저 남자가 어려서 내가 그토록 좋아했다는 아버지란 말인가?
저렇게 비겁하고 아내의 눈치만 보는 남자가 어려서 내가 그토록 흠모했다는 군인이야?
내가 국민학교 들어갈 때까지 남자 옷 입히고 병정놀이 시키던?
저 부인이 돈을 친정으로 몽땅 빼돌릴 때까지 전혀 몰랐다고 변명하는?
숙희는 봉급이 늘어나서 독립할 정도가 언제일까 하고 한숨이 나왔다.
미국, 엄마 말 듣고 괜히 따라 왔나 봐...
그런데 우리 집은 어떤 연유로 미국 이민이 통과됐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