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희가 운진에게 다가가서 말을 하려는데.
운서가 숙희의 손을 가만히 쥐었다 놓았다.
"제가 손해날 짓을 해서 미안하다 하려구요."
숙희의 그 말을 운서가 더 말하지 말라고 신호했다.
운진이 전화기 곁에 놓인 롤로데크를 마구 뒤졌다.
그리고 그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 날 운진은 일찍 가버렸고.
운서도 일찍 가버렸고.
숙희는 피자를 배달시켜서는 반도 못 먹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일찍 버지니아 주 번호판을 붙인 대형 추렄이 꽃을 한가득 싣고 왔다.
일꾼들이 달라붙어서 물건들을 내리는데.
화원 매장의 전화가 울어댔다.
그 전화를 숙희가 받았다. "웨스트 파크 널서리(Nursery)!"
운진이 펜실배니아 농원에서 걸려온 그 전화를 받지도 않고 수화기를 숙희의 손에서 나꿔채서는 전화기에 쑤셔 박았다.
"새끼들이 몇년 거래를 그딴 식으로 끊어?"
운진이 누구 들으란 건지 숙희와 운서를 번갈아 봤다. "얻다가 쓰레기 재고를 처분해."
운진이 작업용 장갑을 손에 끼우며 밖으로 향했다.
숙희가 화가 나서 쫓아 나가려는데, 운서가 말렸다.
"숙희 맘도 아는데. 그래... 말도 없이 나가 버린 운진이 잘못도 있지."
"나중에 같이 살면서도 저렇게 속아지 부리면 어떡해요?"
"그래도 얼마 안 가."
"저런 식으로 입땜 하나 본데요?"
"그런가?"
은서가 그제서야 의미있는 웃음을 보였다. "어제 둘이 한바탕 했어?"
"저더러 무조건 일하지 말라는 거 있죠..."
"벌써 지 마누라처럼 들여 앉혀 놓으려구."
"독재적인 기질이 보이는데요?"
"대부분의 남자들이 다 그렇지, 뭐."
"..."
숙희는 유리문을 통해 밖에서 꽃들이 다 부려지는 것을 지켜봤다.
그 날 오후 늦게 펜실배니아 농원에서 사람이 왔다.
찾아온 남자가 숙희에게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추렄에 실으면서 큰 덩어리를 떨어뜨렸는데, 일꾼들이 보고도 없이 도로 실었다고.
그래서 그 때 연관된 일꾼들을 부정직한 근무 태도와 회사에 끼친 손실을 문제 삼아 해고시켰으며 여기서 클레임 하는 대로 전량 새 물건으로 바꿔주겠다고.
운진은 듣다 말고 '이미 새 거래처를 계약했고 물건도 왔다'고 일축했다.
농원 사람이 무안해 하는데.
숙희가 이번에는 일단 다른 데서 물건이 왔기 때문에 거기다가 주문할 것이 없고.
"We can negociate next time when we order. (다음에 주문할 때 흥정합시다.)"
숙희의 그 말에 농원에서 온 사람이 명함을 남기고 갔다.
그러나 이틀 후 또 물건이 필요할 때, 운진이 버지니아 농원에다 주문했고.
펜실배니아 농원에서 그냥 안부차 전화한다고 연락이 왔다.
그러면서 펜실배니아 농원 측에서 일방적으로 할인 가격을 불러주었다.
"재밌지."
운서가 숙희에게 한 말이다. "물론 저쪽 잘못도 있었지만, 쟤 이런 식으로 거래해."
숙희는 세상이 산다는 것이 얼마나 살벌한가 새삼 느끼는 순간이었다.
"잘 봐 둬. 쟤 비지네쓰 어떻게 굴리나."
"욕만 하던데요?"
"때로는 욕도 필요하더라?"
"욕이 무슨 처세술인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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