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9월인데, 성가대는 11월 넷째 목요일인 추수감사절 찬양을 미리부터 준비한다고.
성가대장이 운진을 타이르는 것이다.
운진은 괜히 성가대를 들어갔다고 후회한다. 그는 한국에서도 해 본 적 없고, 미국에서는 사촌동생이 미리 말을 퍼뜨려서 하는 수 없이 이 날 처음으로 참석해 봤는데.
그는 솔직히 아까 교인들 앉아있는 좌석이 아무 것도 안 보였다.
"노력은 해 보겠습니다만, 제 하는 일이 너무 불규칙해서요... 자신을 못하겠네요."
"주일날 예배 전에 한시간씩 하는 건데, 뭐가 힘들다 해, 이사람아."
"괜히 대답 드렸다가 약속 못 지켜 드리면..."
성도들이 감명받는 걸 똑똑히 봤다며, 성가대장이 채근하는 것이다. "누구지? 삼촌이 집사시지?"
병선이 되려 사촌형을 잡아 끌었다. "성! 가! 가!"
"에이. 이젠 오지 말자!"
운진도 사촌동생을 잡아 끌었다. "순 강제루..."
운진과 병선 둘이 성가대실 안으로 달려 들어걌다.
"저런! 저런!"
성가대장이 민망해 하는데, 코너에서 지휘자가 나타났다. "새로 온 친구, 여기 있어요?"
"근데, 말을 잘 안 듣네?"
"아까 보니까, 몹시 부끄러워 합데다. 차차 나아지갔지요."
"그래서 그런가?"
지휘자가 성가대장한테 인사를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성가대 가운을 벗어서 클라짓에 걸고 있던 운진과 병선은 문 뒤로 숨는다고 서로 맞부딪쳤다.
"미스타 오, 이리 좀 와." 지휘자가 손에 든 종이로 오라는 신호를 했다.
운진은 마지 못해 지휘자 앞으로 갔다.
"이거."
지휘자가 운진에게 종이를 내밀었다. "악볼쎄. 아까 보니까, 악보를 읽을 줄 아는 것 같길래 주는 거야. 사정이 있어서 못 나오더라도 집에서 피아노나 기타 갖고 연습 좀 하라고."
"녜!" 운진은 종이를 얼른 받았다.
좋아서라기 보다는 그 자리를 얼른 모면하려는 꾀이다.
병선이 제 사촌 형을 가만히 봤다.
성가대징이 들어와서 운진의 등을 어루만지며 다른 손으로 저리 가자는 신호를 했다. "자, 다들 아랫층 친교실로 가자구? 부녀회에서 오늘은 맛있는 콩국수를 준비했어요."
여기저기서 우우 오오 하는 불평과 탄성이 나왔다.
"오늘은 내가 사지. 자아, 다들 내려 가자구?"
성가대장이 운진을 자꾸 잡아 끌었다. "아, 사내가 이렇게 수줍음을 타서야 어디 연애 잘 하겠나! 나중에 누가 알아. 만인을 앞에 놓고 독창도 할지."
성가대장의 눈짓과 손짓에 대원들이 운진에게 우루루 모였다.
해서 운진은 꼼짝없이 몰려 나가는 데에 끼어야 했다.
잠시 후, 성가대장의 선처로 성가대원들만 앉을 수 있도록 테이블이 배정되었다.
운진은 밀려서 앉는 척 하다가 병선이가 자리를 못 잡고 도로 나가려 하는 것을 봤다.
"전병선! 일루 와!" 운진은 사촌동생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척 일어섰다.
그리고 둘은 다른 문으로 해서 정말 달아나듯 교회를 나가 버렸다.
"자식이, 좀, 건방지네?" 누가 건물 정문까지 쫓아가며 투덜거렸다.
청년회 회장 황성렬이었다. "저것 없이도 여태 해왔는데!"
성렬이 주위에 모여 섰는 성가대원을 둘러보며 빈정거렸다.
"어디서 왔는지 몰라도 꼴에 악보 좀 볼 줄 아나부지? 싸가지 없이."
그런데 모여 섰던 대원들 중에 주로 여자들이 먼저 돌아서서 가 버렸다.
그리고 성렬만 남고 다들 흩어져 버렸다. 심지어 그와 동조해야 했을 테너 파트 멤버들도 슬그머니 사라져 버렸다. 마지막으로 반주자 진희마저 돌아서서 가버렸다. 아니.
진희는 정문으로 향하고 있었다.
훈련 받지 않은 목소리가 그 정도로 나오면 괜찮은 것이다.
그녀는 밖으로 얼른 나갔다.
영진이 못 만나게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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