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희는 운진이 약봉지를 끓는 물에 중탕하는 것을 지켜본다.
내가 처음 판단했던대로 고단수적인 꾼인가?
가는 데마다 여자가 걸리네?
'그러고 보면 나를 다루는 것도 내 정신을 완전히 빼놓네?'
때로는 진한 애정을 보였다가 때로는 찬바람을 일으키고...
운진이 은색으로 반짝이는 봉지를 가위로 잘라서는 그 안에 든 액을 컵에다 따른다.
"자! 딱 알맞게 데워졌습니다."
운진이 컵을 숙희에게 가져왔다. "냄새 좋으네요."
숙희는 운진의 눈을 찾다가 컵을 받았다. "날 이런 약 먹여서 뭐에다 쓰려구?"
"튼튼하게 키워서 잡아 먹으려고 합니다."
"나 건강해지면 만만치 않을 텐데?"
숙희는 컵을 입술에 가져다 댔다. "나 기운 차리면 발차기 할 건데?"
"어이구, 제발요."
숙희는 역시 이 남자는 보통 꾼이 아님에 틀림없다고 단정지으며, 그러나 약이 든 컵을 기울여서 입 안으로 흘려 넣었다.
"달다!"
"감초가 많이 들어갔나보죠."
숙희는 따끈하게 데워진 약을 단숨에 비웠다.
운진이 빈 컵을 받았다. "제기. 사약 줘도 잘 마시겠는걸?"
"나 빨리 기운 차려서 오운진이 혼 좀 내주려고 한다."
숙희는 소파에 누우며 얇은 담요를 끌어다가 목 밑에까지 덮었다.
그녀는 새삼 제 가슴께를 더 여몄다. 저 남자의 손이 더듬고 지나간 가슴을.
"내가 혼날 짓을 뭘 했길래."
운진이 투덜거리며 부엌으로 갔다.
"많지! 내가 지금 기운이 딸려서 가만 있지, 오운진이 나한테 혼날 일 많지."
숙희는 새삼 운진의 손이 비록 물수건을 통해서였지만 젖가슴을 훑고 지나간 생각만 하면 부끄럽고 꼭 복수하리라 벼른다. '나도 함부로 안 만지는 내 유방을 마구 문질렀겠다?'
그런데 그녀는 그녀가 샤워하며 보더라도 그녀의 유방 크기면 꽤 글래머라는 말을 들을 만한데 감히 더듬고 만지고 했으면서 전혀 내색않는 운진이 의심스럽다.
그녀는 한의가 지나가듯 말했지만 가슴 때린 말을 기억한다.
간이 아주 안 좋으니 그 알콜과 물 분해 작동을 못하고.
그러니 술이 위에서 흡수되어 혈관으로 마구 돌아다니면서 뇌로도 가고.
뇌가 취해 쓰러진 상태에다가 누가 뭘 어떻게 하는지 아나? 나중에 저절로 깨어나면 술 들어가기 직전만 기억하고 그 후로는 전혀 기억을 못 할 거라고...
'저 남자 나 술 취해서 잠들면 날 마구 만지고 그랬든 거 아닐까?'
운진이 컵을 치우고는 냉장고에서 맥주병 하나를 꺼내왔다.
"약 드시는 동안에는 금주는 물론 돼지고기 닭고기 숙주나물 찬 음료수 못 한답니다."
"그렇다고 내 보는 앞에 맥주를 꺼내오네?"
"인내심을 시험해 보는 겁니다."
"어이, 꾼."
"내가 꾼이라면 낚시꾼이 전적이요."
"오운진이는 꾼이야. 틀림없어."
"그래서 손해 많이 보고 다닙니다."
"..."
숙희의 두 눈이 갑자기 촉촉해져 간다. "아까 나더러... 못 기다리겠으면 나 좋을대로 하라는 말 무슨 뜻이야?"
"저는 효자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부모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도 않고요..."
"나를 마구잡이로 아내 삼는다는 말은 무슨 뜻인데?"
"아닌 말로 숙희씨와 사고치고... 애도 태어나고 하면 그 때 가서 부모님들더러 어쩔 거냐 그럴 땡깡도 부리기 싫구요. 그건 숙희씨를 불경하게 대우하는 거거든요."
"나한테 물어는 봤어?"
"녜?"
"나한테 물어는 봤냐구."
"그걸 물어봐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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