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진은 술이 거나해서 집에 왔다.
"펜실배니아에, 너 아는 데 있니?"
운진모가 아들에게 쪽지 하나를 건네주며 한 말이다.
운진은 없다고 하려다가 쪽지를 받았다.
쪽지에 적힌 숫자는 에어리아 코드가 펜실배니아 주 전화번호였다.
숙희씨 고모네네...
운진은 시간을 생각 못하고 그 번호를 돌렸다.
보험회사에서 질질 끌어온 차 사고에 대한 법정 다툼이 숙희쪽의 무과실로 판정나면서.
당시 숙희의 혼다 차가 펜실배니아 주로 등록되어 있었고, 거주지가 고모네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리로 편지와 수표가 발송되었다고.
고모는 당연히 오빠인 한씨에게 전화를 걸었고.
공희모가 운진의 부모네 집 전화 번호를 주었다고.
운진은 화원 안채 전화번호를 걸었다.
"여보세요." 숙희의 자다 깬 목소리가 응답했다.
"보험 배상금이 고모네로 나온 모양이요."
"..." 숙희가 잠자코 있었고.
운진은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는 결국 숙희에게 냉정하기로 결심했다.
비겁한 여자! 그저 잠자코 뭉개는 걸로 일관하려고.
다음날이 주말.
운진은 술기운이 아직 남아서 어질어질한 머리로 화원에 출근했고.
숙희는 운진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아침 일찍 펜실배니아를 향해 떠났다.
그녀는 고모네 가서 사촌인 상훈이와 마주치지 않기를 바랬는데.
숙희가 고모네 집 문을 노크했을 때, 안에서 문 연 이가 상훈이었다.
"어이, 한숙희!" 상훈이 다짜고짜로 숙희를 안으려 했다.
숙희는 집 앞 계단을 뒷걸음질로 내려 섰다. "고모는?"
"고모? 어떤 고모. 여기 니 고모가 있어?"
상훈이가 숙희를 차에까지 쫓아왔다. "어디서 쌈패를 얻었더구나?"
숙희는 하늘색 혼다에 타고 문을 탁 잠궜다.
상훈이 그 차의 유리를 두드리고 차 지붕을 팔 전체로 내려쳤다. "너 이 기집애! 배은망덕이란 단어는 아냐? 바로 너 같은 기집애더러 배은망덕한 년이라고 하는 거다!"
숙희는 혼다 차의 시동을 걸고 상훈이가 물러서든말든 차를 출발시켰다.
이제 그녀는 사촌에게서 년이라는 칭호를 들었다.
"숙모의 당숙의 딸이면, 사돈도 아니지. 아예 남이지."
운서가 남동생에게 들려주는 말이다. "그 처자가 맘에 드니?"
"..."
"어떤 반발심에 그러는 거라면 여러 사람 후회할 일만 만든다."
"그냥... 아무 여자나 집에 들여서 애나 빨리 낳고... 그러는 게 효도 아닌가요?"
"지금 엄마 아빠가 너를 보채?"
"여자가 있는 걸 알면서도 선 보이고 하는 게, 장난은 아니죠."
"니 태도가 불확실하니까."
"제가 어떤 태돈데요?"
"너 숙희 화원에 두고 아무 데고 못 가게 하는 건 뭐야?"
"제가 아무 데고 못 가게 하는 건 없습니다!"
"그럼, 엄마 아빠 돌아가실 때까지 그럴 건가부지?"
"..."
"너는 그게 숙희의 마음을 안 다치게 하는 거라고 생각하니?"
누이의 손이 남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숙희에게는 확답을 줘야지."
"확답이라면, 그 여자한테서 나왔습니다."
"됐네, 그럼, 니네들 사이. 무슨 확답인진 몰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