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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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7. 2. 10:47

   숙희는 정말 약의 효능을 느낀다.
우선 평소 점심 시간에 건물 일층에 딸린 까뻬떼리아를 가면 먹을 게 없었는데. 약을 사일째 먹고 나온 날 아침에 그녀는 샌드위치 하나와 포테이토칲 한 봉지와 캔 소다 하나를 집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맛있게 먹었는데, 속이 아무렇지도 않았다. 다른 때 같았으면 그런 것을 먹고 나서 속에 개스가 차서 고생하거나 금방 화장실로 달려 갔어야 하는데. 
   '진짜 희한하네!'
숙희는 책상 위에 널린 서류들을 보는데도 시야가 환한 것 같다. '눈은 간이라더니 정말 간에 좋은 약도 먹는 건가?'
숙희의 귀에 운진의 말이 쟁쟁거린다.
   숙희씨를 마구잡이로 아내 삼기도 뭣 하고. 
   그렇다고 숙희씨를 보내기도 뭣 하고. 
   아닌 말로 숙희씨와 사고치고... 애도 태어나고 하면 그 때 가서 부모님들더러 어쩔 거냐 그럴 땡깡도 부리기 싫구요. 
   그건 숙희씨를 불경하게 대우하는 거거든요...
   '그렇게 시간만 보내면 뭐가 달라지는데?'
숙희는 손에 쥐어진 볼펜을 가만히 놓았다. '나를 마구잡이로 아내 삼어?'
그녀는 운진이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아니. 
그럴 사람이 못된다고 믿는다.
그가 그럴 사람이었으면 벌써 그랬을 것이다.
그 동안 숙희가 술에 취해서 허물어진 것이 여러 차례인데, 그는 그럴 때마다 그녀에게 전혀 손대지 않은 것으로 믿는다.
   같은 날 점심때가 되어 숙희는 시장끼를 다 느꼈다.
   '진짜 희한하네!'
그녀는 방 밖 기둥에 걸린 원형시계를 쳐다봤다. '열한신데 내가 배고파?'
그녀는 들여다 보던 서류들을 순서대로 맞춰 밀어놓고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녀는 이 날 차를 몰고 나갔다.
그녀가 간 곳은 간판에 할아버지 얼굴이 그려진 닭튀김 레스토랑이었다.
그녀는 평소 먹고 싶어했던 닭고기를 점심으로 먹어보려는 것이다. 다른 때는 그 튀김기름이 몸에 안 맞아서 소화를 못시키고 설사를 하곤 했는데.
이 날 그녀는 닭가슴살 한덩이와 매쉬 포테이토와 음료수를 주문했다.
그녀는 그 곳에 온 동료 여사원이 같이 앉자 해서 동석했다.
그리고 숙희는 닭가슴살 한덩이를 거의 다 뜯었다.
그녀는 음료수도 말끔히 비웠다.
이제 그녀는 세상이 점점 살 맛이 난다.
그리고 그녀는 배 부른 것을 다 느끼고 살 맛이 점점 나니 일에 대해서도 자신이 붙는다.
그래서 그녀가 어떤 항공사의 사업 실적을 분석하고 보고서에 붙인 제목이 이랬다.
   Is that all you can do, B-Airline?
   비-에어라인이여, 그게 당신네가 할 수 있는 전부요?
겉으로는 거대한 항공사로 군림하지만 비-항공사는 벌써 2년째 수익을 못 올린다. 
그 대형항공사에서 일하던 머리들이 속속 빠져 나와서는 단거리 도시를 연결하는 소규모 항공사를 차려서 짭짤한 재미를 보는 반면 비 항공사는 간신히 땡땡 제로 운영인 것이다.
   '비-항공사는 외국 기업이나 매입할까 국내에서는 동업자도 못 찾을 것임'
숙희는 그렇게 작성한 보고서를 채프먼의 메일함에 꽂고 퇴근했다.

   숙희는 일주일째 약을 먹는데, 저녁을 먹고는 그녀도 모르게 아주 시원한 트림이 나왔다.
마침 안채에는 운진이 약만 중탕으로 데워주고 가버려서 아무도 없었다.
   '진짜 희한하네! 내가 트림을 다 해?'
숙희는 장난으로 헛트림을 해봤다. '뭐만 먹으면 안에 걸려서 냄새가 올라오고 했는데...'
그녀는 운진이 마침 있었으면 뽀뽀를 근사하게 해주었을 것 같다.
그 날 그녀는 설겆이를 하면서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속이 편안해지니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
매실을 먹으면 여자한테 좋다고? 
매실을 먹어 봐? 
그래서 오운진을 확 사로 잡아버려?
아주 내 노예로 만들어 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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