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희는 화원을 떠나기로 마음 먹는다.
분한 마음에서는 아니다.
억울한 마음에서도 아니다.
'여기 너무 오래 있었어.'
그녀는 화원에 너무 오래 얹혀 있었더니 별의 별 수모를 다 당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기가 막혀서! 내 마음이 조금 기울어지길래 키쓰도 허락했더니, 뭐, 나를 헤프게 본다고?'
그녀는 인사과에 가서 전근의 기회가 아직 남아있는지 알아보려 한다.
한편, 운진은 영진을 만나서 최근 불거진 병선이와 진희의 불화에 대해 중재할 의논을 한다.
영진은 최대한 용기를 내어 운진에게 물었다.
두 사람의 불화에 어떤 이유로든 기인한 적이 없는 거죠 하고.
"진희씨는 내가 영진씨한테 접근하기 위해 잠깐 들러리 격으로 어울렸었던 것을 잘 이해할 뿐더러 지금도 교회에서 보면 영진씨 안부를 나한테 묻습니다."
"그러니까, 두 사람 사이에 아무런 일 없었던 거죠!"
영진이 그 질문을 던지면서 눈물이 글썽거렸다. "네?"
"아무 일은 커녕 진희씨와는 가벼운 터치만 주고 받았죠."
"근데 그 기집애는 마치 운진씨랑... 자, 같, 자..."
"나랑 같이 잤다고 해요?"
운진은 그 말을 하며 눈 가에 웃음끼가 피어 올랐다.
"그 날 화원에 운진씨 사춘이랑 왔을 때, 그랬잖아요, 나한테. 마치 운진씨랑 같..."
"그 때는... 진희씨가 영진씨의 진심을 알아본다고 장난한 걸로 아는데."
"장난이요?"
"영진씨 질투심을 일으킨다고."
"기집애가, 증말!"
영진이 제법 발끈한다. "내가 그 동안 지 말 때문에 얼마나 마음 고생을 했는데!"
"진희씨는 선을 똑바로 긋는 타입입디다."
"금 똑바로 긋는 게 온 교포가 알게 몸을 함부로 굴려요?"
"남자 만나서 좋은 감정 생겨날 때, 속궁합 맞춰 본다고 하는 게, 나쁜가요?"
"속궁합이라뇨?"
"요즘 사람도 옛날처럼 주위에서 권한다고, 아니면, 나이 들기 전에 살림난다고 결혼부터 했다가... 살면서 부부생활이 원만치 않다고 딴방 쓰고 합니까?"
"결혼하면 백년을 약속하는 건데."
"부부생활이 원만치 않으면 불화가 나고, 자존심 약한 쪽이 바람 피우고, 갈라서는 거죠."
"운진씨도, 그럼..."
"바람이요?"
"속궁합이요!"
"만일 사귐이 익어가고. 결혼까지 염두에 둘 정도로 발전하면, 속궁합은 한두번 정도 맞춰봐서 서로 좋은가 알아봐야죠."
"그러니까!"
영진이 너무 화가 나서 두 손을 불끈 쥐고 부르르 떨었다. "나중에, 나중에 저더러도 속궁합인지 맞춰보자고. 그러니까, 저더러 같이 자자고 할 거란 말이잖아요!"
"그야... 영진씨와 어디까지 발전할 지... 그 때 가서의 일 아닌가요?"
"운진씨!"
영진이 소리치면서 눈까지 질끈 감았다. "전 그런 거 안 해요!"
"영진씨 보수적인 거 잘 알죠."
"결혼해서 신혼여행 가면, 첫날밤 어련히 순결을 허락할까 봐, 그걸 못 참고 미리. 그랬다가 결혼 못 하게 되면 여자인 저만 불결한 여자가 되는 거잖아요!"
"얘기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는데요. 제 사촌동생 병선이와 영진씨 친구 진희씨의 화해를 의논하자고 만나서는..."
운진의 말은 영진의 부릅 뜬 두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 때문에 중단되었다. "운진씨 나쁜 사람예요!"
그러나 운진은 마음이 싸늘해져 가기 시작했다.
똥 뀐 놈이 성낸다고 이 여자 뭔가 걸리는 게 있으니까 속궁합 맞춰 본다는 말에 성질 부리는 거라고.
진짜 숫처녀면 속궁합이란 말 이해 못하지.
그러다 운진은 숙희 생각이 났다. 그 여자 진짜 처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