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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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7. 3. 07:46

   숙희는 종이컵에 든 커피를 마저 비우고 빈 컵을 운진에게 내밀었다.
오션 씨티 보드워크의 공중 화장실 앞에서였다.
운진은 그제서야 제 것과 함께 빈 종이컵들을 우그러뜨려서 길 가 쓰레기통에 넣었다.
한참 후.
숙희는 화장실을 나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운진을 찾았다.
운진은 보드워크에 즐비한 상점들 중에서 게임하는 곳 안에 들어가 있는데.
그는 편안한 자세로 핀볼 머신에 두 팔을 짚고 손가락만 놀리고 있는데.
그의 주위에 구경꾼이 뺑 둘렀다.
숙희는 조금 망설이다가 그에게로 다가갔다.
구경꾼들이 숙희를 보더니 대번에 일행임을 알고 길을 터주었다.
울긋불긋하기도 하고 험상궂은 그림도 그려진 핀볼 머신은 번갯불을 연신 번쩍거린다. 천둥소리 같이 요란한 기계음도 나고 빨간 불빛의 숫자들이 어지럽게 바뀐다.
사람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운진은 그냥 실실 웃기만 한다. 그는 서두르지도 않고 하는데 빛나는 쇠공이 마치 까불이에 자석이라도 있는 듯 늘 와서 달라 붙는다.
그가 쇠공을 겨냥해서 보내는 곳마다 스페셜 포인트가 뛴다.
그러다가 그가 숙희가 옆에서 구경하는 것을 봤다.
   "오! 나왔어요?" 그가 그대로 핀볼 머신에서 물러섰다.
운진은 숙희의 어깨를 돌려 세우고 게임 아케이드를 나왔다.
그가 하다 만 핀볼 머신에는 아마도 다른 이가 덤벼 들었을 것이다.
운진과 숙희가 나무로 깔린 보드워크를 나란히 걷는데, 일단의 젊은이들이 앞질러 가면서 운진에게 엄지들을 세워 보였다.
운진은 답례로 손을 흔들었다.
   "그 유명하다는 씨푸드 레스토랑은 어디 있는데?"
   "삼십간가 사십간가에 있다죠? 천천히 걸읍시다."
   "..."
   "아, 벌써부터 시장해서 그래요?"
   "아니!... 아니, 뭐... 응!"
   "약을 드시더니 좋아진 모양이네."
   "다른 건 잘 모르겠는데, 배가 쉬 고... 프다."
숙희는 저 혼자 웃음이 나왔다. 또 다른 현상을 그에게 말할 수는 없지.
   "소화력이 좋아졌다는 거죠."
   "그런가? 생전 안 그러다가 먹는 걸 밝히니까, 나도 내가 이상해. 이러다가 살 찌면 어떡하나 걱정도 되고. 가뜩이나 키 커서 뭐한데, 살까지 찌면."
   둘은 어느 새 손을 잡고 걷는다.
숙희는 용기를 냈다. "운진씨, 뭐 하나 물어봐도 돼?"
   "녜."
   "내 묻는 말에 남자답게 정직해야 돼?"
   "녜."
   "우디... 나 잘 때... 나 만지고 그러니?"
   "우리가 몇번 자기나 했나요?"
   "그럴 때마다, 나 잠들면 나 만지고 그러냐구."
   "그런... 거... 가 아니라. 숙희씨 잠버릇이 안 좋죠."
   "뭐?"
   숙희는 걷다가 멈춰 섰다. "내 잠버릇이 뭐."
   "가위를 잘 눌리나 봐요. 자다가 갑자기 막 답답해 하면서 어떤 땐 입고 자는 셔츠를 벗던가... 한숨을 푹푹 내쉬다가 입고 자는 바지를... 벗어서 발로 차기도 하고."
   운진의 말하는 얼굴 표정이 태연하다. "이번엔 텐트 안이라 더 답답하셨는지..."
   "내가... 자다가 벗었다고?"
   "늘 본 건 아니니까, 더 자세히는 모르죠. 내 말은 볼 때마다 그러신다는 거."
   "혹, 시, 나 그러면서 다 벗은 적도 있어?"
   "화원에서. 아마 밤에 에어컨이 추우니까 껐다가 아침부터 푹푹 찌던 날?"
   "내가 빨가벗었다구?"
   "뭐, 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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