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1

pt.1 1-1x001 2000년 여름의 끝자락

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7. 27. 04:05

2000년 여름의 끝자락

   숙희(韓叔姬)는 주말부터 시작하는 휴가를 하루 앞둔 금요일 이날도 일찍 출근했다. 
그녀는 오히려 평소보다 30분 더 일찍 출근했다. 
휴가 가기 전에 정리해야 할 일이 많아서이다. 
그녀는 자신의 책상을 밀린 서류 하나 없이 깨끗이 비워놔야 휴가를 가든 집에서 쉬든 마음이 편하다. 
말단 사원까지 휴가를 다 보내고 나서 끝으로 그녀에게 차례가 왔는데,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  
   그녀가 사는 미 동부지역 해안은 8월 하순이 지나면 이미 바닷물이 차가워지기 시작하고, 햇볕만 대낮에 따갑지 아침 저녁으로 선선해지는 바닷가는 서서히 폐장을 시작한다. 
그리고 미국 노동절날인 9월 첫째 월요일이면 공식적으로 여름이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닷가의 그 수 많던 피서인파가 9월의 첫 주가 지나면 거짓말 같이 거의 다 사라지고 모래사장은 늦은 바다를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텅텅 빈다. 
대다수의 학교들이 가을 학기를 개학하고 직장마다 여름 휴가가 끝나가기 때문이다.
숙희 그녀는 도리어 그런 빈 바다를 더 좋아한다. 그래서 그럴 때를 골라 휴가를 간다. 
   여름 성수기 때는 하루에 삼백불을 홋가하는 최고급 호텔 방 하나를 비성수기 때는 말만 잘하면 칠팔십불에 빌릴 수 있고, 또 말만 잘 하면 높은 층에서 바다를 내다볼 수도 있다. 
어떤 이들은 이런 기회를 더 좋아한다. 
숙희가 그러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숙희가 해마다 이맘 때 쯤이면 찾아가는 바닷가에 호텔이 하나 있다. 
그리고 그 호텔에서 의례히 지정된 방 하나를 배정받는다. 
그녀는 때로는 그 방에서 혼자 일주일을 묵다가 오곤 한다. 
그렇게 하는지 그럭저럭 20년째인데...
   마흔여덟의 독신인 숙희는 어느 누구한테도 절대 말하지 않는 어떤 추억 하나를 가슴 속에 깊숙히 품고 산다. 
그런 추억을 20년째 품고 산다는 말과 같다. 
그녀의 넓직한 책상 위에 놓여있는 사진틀 둘. 
하나의 사진틀에는 젊은 나이의 한 남자가 약간 엉거주춤하게 섰는 모습의 사진이 들어있다. 
또 하나에는 그녀가 얼굴만 이쪽을 향했는데 약간 흘겨보는 모습의 사진이 들었다. 
   이 날 숙희는 책상에 앉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사용자 로그인을 하고 이메일을 열었다. 어제 퇴근 후부터 이날 아침까지 새로 들어온 이메일이 스무개도 넘어 그녀는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그녀는 우선 제목들로 그 중요성을 가늠해 봤다. 
그녀는 모든 이메일들을 연달아 프린터로 보내고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통로는 진한 커피향이 가득했다. 칸막이마다 들어앉은 사원들이 하나같이 스타벜스 커피컵을 책상에 놓고 이제 마악 일들을 시작하려고 굼뜬 시동들을 걸고 있다. 
아침에 삼사십분은 그런 식으로 허비한다. 
상부에서 커피 타임을 줄이라고 암만 경고해도 그 커피 타임은 좀체 고쳐지지 않는다. 
   숙희도 사실은 지금 반칙을 하고 있다. 
컴퓨터를 켜서 사용자 로그인하고 이메일을 엶으로 일단 출근을 알리고, 아랫층 구내 식당으로 가고 있다. 
   직장은 이제 출근부에 도장 찍는 아니, 이니셜로 알리는 일은 당연히 없고, 보통 정문을 몇시에 지나가느냐로 출근 신고 하는데 얼마 전부터 회사 지침이 바뀌었다. 지금처럼 컴퓨터를 켜고 사용자 로그인을 하면 자동적으로 출근신고가 되는 것이다. 
정문을 몇시에 통과했느냐는 상관이 없다. 
아이디 뱃지로 카드 리더를 건드려서 자동기록 되게 하는 시스템이 없어졌다. 얌체 사원들이 카드 리더가 벳지의 스와이핑을 읽고 그 주인의 출근을 근거로 삼는 것을 악용하여 맘대로 놀러 다니는 것을 척결하기 위해서였다. 게다가 경비부서는 카드 리더를 경비실 창 가까이로 옮겨서 누가 카드를 스캔하는지 지켜보기 시작했다.
퇴근도 로그오프를 해야 자동으로 신고가 된다. 몇시에 건물을 나갔느냐는 상관이 없다. 만일 켜놓고 나가면 약 이십분 후 랜룸의 중앙통제에서 경비실로 연락해서 경비가 그 컴퓨터를 로그오프 시킨다.
Any how...
   숙희는 4층 복도의 엘레베이터 문으로 가서 하향 단추를 눌렀다.
엘레베이터는 계속 상승하는 소음만 냈다. 출근이 아직도 한창인 것이다. 아니면 많은 이들이 그녀가 향하고자 하는 까페떼리아에서 아침거리를 사서 올라가는 중이거나.
숙희는 계단으로 해서 내려가자 하고 몸을 돌이켰다.
그녀가 비상계단문을 밀어서 여는데 엘레베이터가 왔다고 땡 소리를 크게 냈다.
그녀는 운동 삼자고 비상계단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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