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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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7. 27. 04:08

   제프가 숙희가 내릴 4층을 누르고 자신이 내릴 8층을 눌렀다. 
손가락 여러개가 3층, 5층, 6층을 누르고 엘레베이터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프가 숙희에게 말을 걸었다. “For how long? (얼맛동안이나?)”
   “Ten days. Actually, weekdays plus weekends. (십일간. 사실은, 오일에 주말을 보태서.)”
   “Very nice! Have fun! (아주 좋네! 재미 많이 봐요!)”   
   “땡쓰!” 하며, 숙희는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미소를 지으니 그녀의 볼에 깊은 보조개가 피었다. 
그녀는 나이 마흔여덟살 치고도 아직 주름이 하나도 없다. 곱게 늙는 상이다. 
애를 안 낳아 본 몸매는 아직 풍만하면서 그 선이 곱다.
엘레베이터가 3층에서 서니 남자 하나와 여자 하나가 같이 내리고 문이 다시 닫혔다. 
엘레베이터는 움직이는 것 같지 않게 곧 4층에서 문이 열렸다. 
숙희는 제프에게 인사를 했다. “See you, Jeff. Bye! Thanks for the coffee? (또 봐요, 제프. 빠이! 커피 고마와요?)”
   “You’re quite welcome! (아주 천만예요!)” 제프가 대답했다.
숙희가 엘레베이터를 내렸고. 엘레베이터의 문이 매정하게 닫히는 것을 보는 제프의 눈에 약간 슬픔이 서렸다. 
그는 아직도 쑤를 사랑한다.

   사무실로 돌아온 숙희는 프린터에 쌓여져 있는 종이들을 걷었다. 
그녀가 커피 컵을 책상에 내려놓고 들여다 본 첫 장은 인사명령이었다. 
두 개의 이름은 다른 부서로의 전출이고, 몇몇 이름은 다음 주부터 시작하는 신입사원들이다. 
숙희가 다음 주부터 휴가이기 때문에 신입사원에 대한 회사소개 시간의 강사가 그녀로부터 비서인 로레인으로 바뀐 것 말고는 볼 게 없는 것 같아 첫장을 손가락 끝으로 밀어 휴지통에 떨어뜨리고, 의자에 천천히 앉으며 다음 장을 들여다봤다. 
어떤 부서에서 올라온 탄원서였다. 
   ‘Not again! (또면 안 돼!)’ 
숙희는 다른 손으로 커피 컵을 기울여 입술에 가져가려다가 멈추고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녀는 눈을 내리깔아 책상 밑의 휴지통을 내려다봤다. 그녀가 금방 버린 종이가 쓰레기통을 씌운 비닐백 안에 누워 있다. 
신입사원들의 명단. 
그녀는 커피 컵을 책상에 내려놓고 그 손으로 휴지통 안의 종이를 집는다 했는데 컵이 손가락 끝에 걸려서 기울어지며 내용물을 왈칵 책상 위로 쏟았다. 
   ‘Oh, my goodness! (어머나, 이걸 어째!)’ 
그녀가 손을 재빨리 치워 뜨거운 커피에 살이 데이지는 않았지만 쓰레기통 안은 커피물로 범벅이 됐다. 
그녀가 커피 컵을 재빨리 잡아 세우니 반은 건져졌다. 
그녀가 다시 보려 했던 명단종이는 커피물을 고이게 했을 정도로 구제불능이었다. 
커피가 카펫으로 쏟아지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숙희는 책상 위의 티슈를 많이 뜯어서 쏟아진 커피를 부랴부랴 훔치고, 그 티슈를 휴지통 안에 던져 넣었다. 
좀 전에 다시 보려던 신입사원명단은 이내 그녀의 뇌리에서 잊혀졌다. 
그녀가 반쯤 남은 커피와 파운드케잌을 먹으며 읽어본 탄원서는 이런 경우에 성희롱으로 가능한가 하는 질문으로 끝맺었다. 
그녀는 보낸 이의 이름을 보고 그리고 참조인의 이름을 보고 나서 그 용지를 들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그 일의 처리를 옆 방의 매리앤에게 위임하려는 생각으로 방을 나섰다.
그런데 방 바로 앞에 위치한 자리의 로레인이 숙희에게 종이 한장을 흔들어보였다. “Sue! I think we got a Korean worker this time. Or Chinese?(쑤! 이번에 우리 한국인 직원을 고용한 것 같은데. 혹은 중국인?)”
   “Really? (정말?)” 숙희는 로레인의 책상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Look here! Last name is Moon. Isn’t Moon Korean name? (여기 봐! 성씨가 문이야. 문이면 한국 이름 아냐?)” 
   “I guess? (그럴걸?)” 숙희는 그 종이를 받아 들었다. 
아까 다시 보려 했던 인사명령! 
   ‘그래! 나도 뭔가 이상해서 보려 했어!’
숙희는 속으로 부르짖으며 종이에 찍힌 이름들을 읽었다. 
그녀는 맨 밑칸에 적혀진 이름에서 눈이 멎었다. ‘써니 문? 웬지 귀에 무척 익은 이름인데?’ 
숙희는 그 종이를 로레인에게 도로 돌려주고 몸을 돌이켜 매리앤의 방으로 가려다가 그 자리에 딱 굳어졌다. 
써니 문이라고? 문써니?
그녀는 로레인의 손에서 프린트물을 도로 가졌다.
써니라면 설이(文雪)다! 운서(運書) 언니의 딸! 
걔가 벌써 취직할 나이가 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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