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희는 설이를 제 방으로 데려와서 책상 맞은 편 의자에 앉히고는 방문을 닫았다.
“How’s your mom? (엄마가 어떠시다고?)” 숙희는 재차 물었다.
설이가 눈을 피해 잠시 머뭇하다가, “She’s home now. (엄마는 지금 집에 있어요.)” 하고, 대답했다.
숙희는 그 말에서 어떤 뉘앙스를 느끼고 무슨 뜻인가 물으려다가 아이가 초면이라 아무래도 경계를 할 것 같아 그만두고, “Do you still live in Pennsville? (너 아직도 펜스빌에 살어?)” 하고, 물었다.
펜스빌은 미 메릴랜드 주(州) 북쪽 지방에 위치한 한 동네의 이름이다.
설이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 그녀의 고개가 숙여졌다.
숙희는 더 이상 묻는 게 안 좋을 것 같아 대신 책상 위의 사진틀을 손으로 돌려 설이쪽으로 향하게 했다.
그리고 그녀는 조심히 물었다. “You know this man, right? (너 이 남자 알지, 그렇지?)”
숙희의 그 말에 설이가 고개를 들어 사진을 봤다. 설이의 표정이 어리둥절해 하다가 사진의 인물들을 어디서 봤더라 하는 것 같더니 고개를 번쩍 들어 숙희를 봤다.
“Don't you? (알잖어?)” 하고, 숙희는 재차 물었다. 그러면서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설이의 고개가 떨구어졌다. “He’s dead. (그 남자 죽었어요.)”
“What! (뭐라구!)” 하며, 숙희는 깜짝 놀라 그만 사진틀을 손 끝으로 쳐서 쓰러뜨렸다.
쨍그랑! 하고 그 사진틀 유리가 책상 표면에 부딪혀 깨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마치 숙희의 머릿 속의 기억부분이 깨지는 소리 같았다.
숙희는 사진틀에서 손을 천천히 떼었다. 그리고 그 손으로 머리를 고였다.
“Can I go now? (이제 저 가도 돼요?)” 설이가 일어서려다가 주춤했다.
숙희는 손에 고인 머리를 움직이지 않고 눈을 감은 채 있다가 물었다. “When? When did he die? (그는 언제 죽었어?)”
“I don’t know. (몰라요.)” 설이의 음성이 떨리게 들려왔다.
그래서 숙희는 손을 머리에서 떼고 설이를 정면으로 봤다.
“Can you stop by my office after the class? (강습 끝나고 내 사무실로 올수있니?)” 하고, 묻는데 그녀는 하마터면 울음이 터져 나올 뻔했다.
“네...” 하고, 대답한 후 설이가 조용히 방을 나갔다.
숙희는 느린 동작으로 책상 밑의 휴지통을 들어올려 책상 끄트머리에 대고 사진틀을 그쪽으로 살살 밀었다. 유리 조각들이 책상 표면을 걱걱 소리내어 긁으며 딸려와 휴지통으로 떨어졌다.
유리 조각 떨어지는 소리가 더 이상 안 나자 숙희는 휴지통을 내려놓고 사진틀을 조심스럽게 천천히 세웠다. 짙은 밤색의 나무틀 안에 삼각형 모양의 유리조각이 아직 남아 있다.
남아 있는 유리 삼각형 안에 숙희가 들어있고 남자는 공기에 노출됐다. 마치 둘을 유리조각이 대각선으로 갈라놓은 듯한 형상이 되었다.
숙희는 사진틀을 먼저처럼 다시 세워놓았다.
그리고 그녀는 티슈를 많이 뜯어서 책상 위의 유리가루들을 살살 훔쳤다.
그녀는 몇번에 걸쳐서 유리가루들을 말끔히 없앤 후 그 티슈를 휴지통에 버리고 스티커를 하나 썼다. 그녀가 휘갈겼지만 달필인 필기체의 메모는 이랬다.
Caution! Broken Glasses(주의! 깨진 유리들)
그녀는 그 스티커를 휴지통에 잘 보이게 붙였다.
저녁에 청소원이 발견하고 조심하기를 바라는 의도였다.
이 때 이 후로 숙희는 설이가 내뱉은 ‘그는 죽었어요’ 란 말을 하루종일 되뇌이며 지냈다.
'무슨 연고로 젊은 나이에 죽었을까? 병이 있었나?'
숙희는 깨진 유리 속에 들어있으면서 흘겨보는 듯한 자신의 사진을 마냥 들여다봤다.
남자는 유리 밖에 나오니 더욱 굳어진 얼굴이 된 것 같다.
내성적이지만 착하기만 했던 남자.
그녀가 장난으로 툭툭 치면 실실 웃으며 몸을 도사리기만 했던 남자.
'설마... 자살은 아니겠지.'
그건 모를 일이다.
양가 부모의 악랄한 반대에 부딪쳐 고민하다가 그녀가 둘이 일을 저지르자고 덤볐는데.
서로 나중에 후회할 일은 만들지 말자며 말리기만 했던 남자.
그녀는 끝내 집에서 쫓겨났고.
그래서 그녀는 타락의 길을 택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어리석은 짓이었지만 당시 그녀로서는 다른 길이 없었다.
숙희는 20년 전 일만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죽고 싶은 심정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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