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운진의 부친 오상현이 판티액 스테이숀 웨곤을 인도 앞에 댔다.
옆자리에 앉은 그의 모친이 영란을 보고는 고개를 까딱했다.
“어머! 부모님?”
영란이 허리를 구십도로 굽혀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그의 부모는 전혀 뜻밖이라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에에하고 건성으로 대꾸했다.
“교회... 같은 성가대 친구예요.”
운진이 구차한 변명을 했다. 말해놓고 그가 무안스러웠다. 여자랑 친구?
“저, 제가 운진씨한테 졸업 축하로 한턱 내려 했는데요, 어떠세요, 같이 가실래요?”
영란이 말했다. “어디 좋은 레스토랑으로 모실께요.”
“우, 우린 괜찮소.” 운진의 부친이 더듬거리며 대꾸했다.
“너나 가 봐라.” 그의 모친이 둘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 플리이즈, 엄마! 왜 그런 미소를! 우리는 아무 사이도 아닌데!’
운진은 속으로 한탄했다. 오늘 이 후 모친의 질문 공세가 벌어질 것이다.
“차는, 이 걸로 같이 왔는데, 그럼, 운진이 니가 우리를 집에 먼저 내려줄래?”
“오, 걱정말고 가세요, 아버님. 제가 차가 있거든요. 제가 저녁 같이 먹고 나중에 운진씰 집에까지 태워다 줄께요.”
뭐라 말 할 틈도 안 주고 영란이 일을 그렇게 처리해 버렸다.
운진의 모친이, “수고해요, 그럼!” 하고, 차는 떠났다.
“어떡하실래요. 여기 계실래요, 차 가져올 동안? 아니면 차까지 같이 걸어가실래요?”
“가, 가죠, 차로.”
웬지 운진은 서둘러서 그 자리를 떠나고 싶었다.
영란의 베이지색 BMW 318 을 타고 스태디움 주차장을 돌아나오는데, 운진은 숙희를 보고 얼른 고개를 숙여 숨었다.
그녀는 연두색 바바리 코트를 휘날리며 손목시계를 연신 보며 졸업식이 끝난 실내 축구장으로 부지런히 가고 있었다.
운진은 보고 싶었던 마음과는 달리 숙희를 아는 척할 용기가 나질 않았다.
옆에서 운전하는 영란에게 미안할 것 같았다. 왜.
“오늘 우리 술도 마셔요, 네?”
영란의 명랑한 말이 운진을 움찔 놀라게 만들었다. "술이요?"
“호호호! 왜 놀래세요? 제가 먼저 술 먹자 하니까 놀라워요? 여잔 술 먹으면 안 된다는 주의자예요?”
“아, 아뇨. 그게 아니구. 녜, 그러죠, 뭐. 한잔 꺽죠.”
“왜 꼭 꺾는다구해요?”
“팔을 꺾으니까 그러나 보죠. 저두 몰라요.”
“팔을 꺾으니까 한잔 꺾는다아. 흠, 말 되네. 술 한잔 꺾는다.”
영란의 차가 스타디움을 완전히 다 빠져 나온 뒤에야 운진은 시트에서 허리를 폈다. 그리고 새삼 BMW 내부를 둘러봤다. 가죽 시트에 나무 장식에 비싼 티를 내었다.
“정말 용기가 대단하세요.” 영란이 밑도 끝도 없이 말을 불쑥 내뱉았다.
“녜?”
“그 나이에 악착같이 졸업을 하시고. 부러워요. 나도 해 볼 걸.”
“지금이라도...”
“아뇨. 전 예능 계통이라 인문계 성적이 아녜요. 운진씬 그래도 인문계 출신이라 아는 게 많잖아요. 우리네는 늘 발성 연습만하고.”
“아뇨, 제 말은 여기서도 저기, 피바디나 줄리아드 같은 데를...”
“제가 한국에서 졸업을 안 했어요.”
“아, 그래도 여긴 추라이(try) 할 만 했을 텐데...”
“교수님이 저 보다 더 우셨어요. 절 많이 꾸짖으셨죠.”
“아, 녜에.”
“사실은 제가 성악 하기 싫었어요. 전 막 째고 꼬매는 일을 늘 해 보고 싶었어요.”
영란의 차가 큰 신호등에서 좌회전을 하는데, 스태디움이 왼쪽에 나타났다.
운진은 시력이 좋은 것도 탈이었다.
그는 먼 거리이지만 숙희를 코트색으로 알아봤다.
숙희는 늘 몰고 다니는 하늘색 혼다 차 문 곁에 서서 실내체육관 건물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그 모습은 그가 탄 차가 차량의 물결 속으로 섞이면서 안 보이게 되었다.
그는 그것을 마지막 장면으로 삼고 숙희와 헤어진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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