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1

pt.1 11-2x102

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8. 10. 06:19

   둘이 걷다 보니 같은 곳은 아니겠지만 골프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둘은 약속이나 한 듯이 벌판을 향하고 섰다.
   “근데요, 이렇게 골프 핑게로 빠져나올 수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어요.”
   “어느 분 아이디언데요?”
   “아빠요. 호호호!”
   “숙희씨가 부탁하니까 순순히 들어주세요?”
   “음, 아뇨. 아빠랑 한날 술 한잔 하면서, 진짜로 운진씨를 결혼상대자로 진지하게 생각한다고, 진진하게 말씀드리고 도와 달라고 애원했어요.”
   “그랬더니 골프 치러 가자고 하셨나 보죠?”
   “아니죠. 저를 여러가지로 시험해 보시고 제가 어떤 어려움도 버텨낼 각오가 돼있다는 걸 아시고 일단은 운진씨를 보시겠다 하셨죠. 그러기 위해서는 제가 나올 수 있어야하니까, 아빠가 꽤를 내셨죠.”
   “와아. 무슨 스릴영화 찍는 기분인데요?”
   “그렇죠?”
   “그나저나 숙희씨 아버님이 절 좋게 보셨는 지 궁금합니다.”
   “제가 아빠를 잘 아니까 말씀 드릴 수 있는데, 처음 운진씰 보시자마자 농을 하셨잖아요? 영어로 해 봐라 어떻게 먹여 살릴 거냐 등등... 그 정도면 아빠가 관심이 있으시다는 증거예요.”
   “없으시면요?”
   “없으셨으면, 우리 아빠니까 확신하는 데요, 그냥 절 데리고 나가셨을 거예요.”
   “다행입니다. 그럼, 한쪽은 우리편이군요.”
   “그렇죠? 다행히 운진씨도 울 아빠표를 무난히 얻으셨어요.”
   “진짜 다행이네요. 휴우! 아버님이 운동 잘 하세요?”
   “유도선수셨대요.”
   유도씩이나!
운진은 하마터면 웃을 뻔 했다. 그러나 그는 시침을 뗐다. “유도! 아버진 유도, 딸은 태권도. 동생은요?”
   “걘, 공부벌레였어요.”
   “아, 녜에...”
   “제가 일곱살때까지, 보이처럼 입고 놀았다고 말하면, 믿으실래요?”
   “사진 있어요?”
   “네.”
   “보여줄래요?”
   “싫어요!”
   “믿기지가 않네. 하긴 그런 기질이 있었으니까 그 하기 힘든 태권도도 3단까지 땄겠죠?”
   “호호호! 그런가요?”
둘은 오랫만에 만나 즐겁게 지냈다.
   그러나 일은 둘에게 호의적으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남편의 간곡한 권유에 숙희의 모친이 운진의 부모와 상면하는 자리에 나왔다. 
운진의 부모도 순순히 나온 것은 아니었다. 
그의 부친은 아들이 신신당부하고, 또 우연한 자리에서 한번 숙희를 보고 늘 좋게 생각해 오던 터라 별로 내색없이 악속 장소에 나온 것이다.
그의 모친은 아들을 연신 때렸다. “이그, 미친 놈! 들 떨어진 놈! 여자한테 맞고도 살려고 한대? 차라리 여자 깡패하고 살아라!” 
   "엄마. 그런 말을 여기서 왜 해요."
   "어디서 딸이라고 선머스마처럼 키워서는, 양반집 아들을 넘봐."
그러나 운진모의 그러한 말은 식탁 건너에는 들리지 않았다.
비겁과 비굴의 덩어리.
운진은 모친이 그 날처럼 미운 적이 없었다.
부친들끼리는 악수가 오갔다.
아버지들끼리야 해라 마라 간섭하고 소매 걷어부치며 반대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그 날의 그 자리는 순전히 모친들의 대결 장소였다고 보는 게... 
그런데 불꽃은 두 여편네에게서 시작부터 튀었다.
두 여편네가 각각 아들이나 딸을 야단차는 것이었다.
   그것도 입에서 침이 튀도록...

'[소설] 두개의 세상 pt. 01' 카테고리의 다른 글

pt.1 11-4x104  (0) 2024.08.10
pt.1 11-3x103  (0) 2024.08.10
pt.1 11-1x101 산 너머 산  (0) 2024.08.10
pt.1 10-10x100  (0) 2024.08.10
pt.1 10-9x099  (0) 2024.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