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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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8. 10. 06:24

   에셐스로 온 운진은 모친에게 깨우지 말라 하고 소파에서 하루 종일 잠만 잤다. 
그는 저녁에 조카들이랑 외식을 했다. 
남자조카애는 뭐가 좋은지 연신 싱글벙글했다. 
여자들만 있는 집안에 남자가 왔으니 말동무나 될 줄 알고 그러는 모양이었다. 
여자조카 설이는 운진에게 벌써 시중을 잘 들었다. 
음식점에서도 반찬을 이리저리 돌려주고 물도 떨어지기 전에 사람을 불러서 물컵을 채우게 했다. 
   “우리 설이는 나중에 시집가면 살림 너무 잘 하겠다.”
삼촌의 그 말에 설이는 배시시 웃기만 했다.

   이튿날 일요일도 운진은 오전 내내 잠만 잤다. 
평생 밀린 잠을 한꺼번에 자버리는 듯 물만 마시고는 또 잤다. 
정작 깨어보니 눈 앞이 어둑했다. 
   “엄마, 몇시야!” 
운진 그가 몸만 돌려서 빈 공간에 대고 소리를 지르니 팔순 노모가 방문을 빼꼼히 열고 내다 봤다. “여덟시다. 밥 먹을래?”
   “응. 인제 배 고프네.”
   “인나라. 무슨 잠을 그렇게 많이 자! 인제 밥 먹으면 또 잘 시간인데, 잠이 오겠어?”
운진이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니 설이와 마잌이 방바닥에 앉아서 TV를 보고 있다가 둘 다 일어났다.
   “아냐, 앉어, 앉어. 난 밥 먹을 거야.” 
운진은 식탁 의자에 가서 앉았다. 무심결에 티비를 보니 한국 드라마였다. 예전에 한국에서 눈에 익은 여자 탤런트가 늙은 얼굴로 연기를 하고 있었다. 
   “와, 저 여자 탈렌트 G 아냐?”
   “맞어요, 삼춘.” 설이가 대답했다.
   “와, 되게 늙었네, 이젠. 몇 살이야, 저 여자, 지금?”
   “피프티 넘었을 걸요?” 설이가 다시 대답했다.
   “그렇겠네. 내가 벌써, 와하, 아, 징그러. 나두 오십이다.”
그 말에 아무도 대꾸를 않는다. 
오십된 자가 이혼을?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운진은 스토리도 모르고 그저 화면을 바라다 봤다. 
남자 탤런트 K도 나오고, 앳띤 여자의 얼굴들은 아예 모른다. 달라진 게 있다면 요즘 신인들은 예전 사람들에 비해서 팔 다리도 늘씬늘씬하고 키도 크고 이목구비가 또렸했다.        
   운진이 모친에게서 늦은 저녁상을 받는데, 운서가 들어섰다.
그녀는 척 봐도 어디 식당 같은 데에서나 입을 만한 옷 차림인데 양 손에 무얼 잔뜩 들었다.
설이가 얼른 가서 그것들을 받았다.
운진은 저도 모르게 무심코 남자조카를 봤는데, 마잌이 얼른 일어섰다. "헤이, 맘."
운서가 식탁에 와서는 털썩 앉았다. "인제 밥 먹는 거야?"
   "녜. 누님 식사는?"
   "식당에서 좀 먹었는데... 나도 좀 먹을까? 엄마?"
그들의 노모가 이미 밥 한공기를 가져왔다.
   "니들도 먹을래?" 노모가 손주들에게 소리쳤다.
   "No!"
   "아뇨, 할머니!"
사내놈과 여자애가 동시에 대답했다.
운서가 남동생의 희끗희끗해져 가는 머리를 쳐다봤다. "왜?"
   "왜는! 미친 놈 별거하는 거지." 노모가 말하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설이의 얼굴이 돌아왔다가 되돌아갔다.
민이는 누이 너머로 이쪽을 보고는 티비로 돌아갔다.
   "매형하고는 연락해요?"
동생의 그 말에 운서는 모친을 흘낏 봤다. "나 집에 왔다니까 다니러 온댄다."
운진은 혀끝을 찼다. "가능하면 두 분..."
   "설이애비가 참 성인군자다." 노친네가 밑도끝도 없이 그렇게 말했다.
운진은 정말 하며 고개를 끄떡였다.
   아주 가끔 이상한 바람이 불면 휭하니 사라졌다가 한참 만에 돌아오는 여인네를 마냥 기다리는 매형이란 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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