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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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8. 11. 03:43

   숙희는 제일 먼저 설이가 일을 잘 하고 있나 그것부터 알아봤다. 
그렇게까지 큰 기대는 안 했는데, 의외로 얼마 만에 자리를 더 나은 데로 옮겼다고 듣게 되었다. 데이타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인정받았다고 들었다.
   ‘제법이네? 운서언니는 공부는 많이 하셨어도 그리 빠릿빠릿하지는 않았는데…’
숙희가 구내 식당으로 커피를 사러가는데, 설이가 파일을 두 팔로 한아름 안고 부지런히 라비를 가로 질러가는 게 발견됐다. 
   “얘, 설이야!” 숙희는 설이를 불러세웠다.
설이가 숙희를 보고는 얼른 달려와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쑤 아줌마!”
   “어딜 그렇게 바쁘게 가니?”
   “이것들을 모두 파일해야해요.” 설이가 품에 안은 서류들을 흔들어 보였다.
   “그러니? 나 커피 사러 가는데 너두 같이 갈래?”
   “저, 시간 없어요.”
   “그래? 그럼, 이따가 내가 런치 살께, 그 땐 올 수 있니?”
   “네.”
   “이따 열한시 반에, 일레븐 떠리에 까페떼리아에서 만날까?”
   “네.”
   “그래.”
   “안녕히 가세요.” 
설이가 머리를 꾸벅 숙여 보이고 가던 길을 계속하다가 뒤를 보았다. 
숙희는 손을 한번 더 흔들어 주고 몸을 돌려 식당으로 갔다. 
많은 사람들이 새삼스럽게 휴가 어땠냐고 물어왔다.

   점심 때 만난 설이는 무척 정감있게 대해 왔다. 
그 새 안면이 익숙해진 탓일까, 아니면, 워낙에 사교성이 있어선가, 설이는 스스럼 없이 말도 잘했다. 
숙희는 주로 듣기만 했다.
설이의 입에서 삼촌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안 나오는 것이다. 
눈치가 보통이 아닌 지, 아니면, 어디서 주의를 단단히 받았는 지 몰라도 아예 집 식구 얘기를 전혀 하지 않았다. 하긴 덩치가 작아서 그렇지 나이가 벌써 스물을 한참 넘었는데, 그 정도의 눈치는 충분히 있을 법했다. 
   '나는 네 나이 때 네 삼촌과 헤어지고... 내가 세상을 다 아는 줄 알고 과감히 집을 나왔는데.'
숙희는 애써 설이에게 미소를 계속 보냈다.
설이는 주로 새로 시작한 일과 먼저 해 본 일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다. 차근차근 비교를 하며 지금의 일을 하고 있게 된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누누히 말했다.
숙희는 어떻게 하면 빠른 시일 내에 지속적으로 승진할 수 있는지 간단히 일러주었다. 
   “첫째도 애디튜드(attitude), 둘째도 애디튜드, 셋째도 애디튜드. 이해할 수 있겠니?”
설이가 고개를 갸웃하다가 물었다. “애디튜드가 왜 그렇게 중요해요?”
   “애디튜드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보여주니까.”
   “흠, 좀 더 자세히 가르쳐 주시면요?”
   “회사에 대한 애디튜드. 상관에 대한 애디튜드. 일에 대한 애디튜드. 그리고 동료 간의 애디튜드. 여긴 어디나 마찬가지지만 혼자 일 하는 곳이 아니잖아. 별의 별 사람들이 모여서 일 하는데, 혼자 독판치면 환영을 못받지. 암만 내가 똑똑하고 다 아는 것 같아도 남을 존경하고, 리스펙트(respect), 협조하고, 코아퍼레이션 (cooperation), 그리고 don’t complain in public! (사람들 앞에서 불평하지 마!)”
   “아, 네에, 잘 알았읍니다!” 설이가 고개를 크게 숙여 인사했다.
   “지금 집에서 너 혼자 버니?”
숙희는 그게 왜 궁금했을까...
설이가 숙희 개인적인 그 질문에 스스럼없이 답했다. “그런 셈이죠. 마잌이 좀 벌긴 버는데 지 치닥거리도 모자라요.”
   “너 여기서 낳고 자란 애가 치닥거리란 말을 어떻게 아니?”
   “엄마가 늘 쓰니깐요.”
비로소 설이의 입에서 가족의 단어가 나왔다. 
숙희는 설이가 거기까지 말했을 때 일어섰다. “Good luck, Sunny! (행운을 빌어!)” 
설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구십도로 인사했다.  
숙희는 큰 키에 당당한 걸음걸이로 사라졌다.
설이는 그 여인이 사라진 코너를 한참 보다가 움직였다.
   암만해도 삼촌이 별거하는 이유가 저 아줌마 때문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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