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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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8. 12. 02:21

   복권기계가 삐이소리를 내고는 뭔가를 찍어냈다.
   “All yours! (이제 네 거야!)” 
여자가 가게를 나가려 했다.
운진은 잽쌔게 달라 붙어서 천불씩 현찰로 들은 봉투를 남녀의 손 안에 각각 쥐어주고 물러섰다.
그들은 어 어 하다가 픽 웃고는 손을 흔들고 떠났다.
   “와아, 저것들도 돈 처먹네? 기대했었다는 태도들이네?” 형록이가 뒤에 대고 욕을 했다.
   “다른 코리안들이 베려놔서. 안 하면 기계를 뺏아가지, 임마. 씨발, 별 수 있냐?”
   “씨팔놈의 코리안들. 그 놈의 와이로 멕이는 건 미국 와서도 못버리네!”
   “미국도 와이로가 통한다니까? 참 나!”
   “난 미국은, 씨발, 온 인간이 정직으로 똘똘 뭉친 줄 알았더니!”
   “근데, 그걸 코리안들이 바꿔 놓잖냐.”
   “씨발, 왜정시대 때부터 내려온 전통이 어디 가나!”
   “네가 왜정시대를 어떻게 아냐? 놀구 있네, 자식!”
   “그나저나 형님은 처제랑 재혼할 거유?”
   “오늘 변호사가 그러는데, 그래선 안 된다네? 너두 들었잖아.”
   “그걸 인제 알았어? 씨발! 나도 아는 걸?”
형록이 운진을 아래 위로 흘겨보고는 창고 쪽으로 가 버렸다. 
창고문이 부서져라 닫히는 소리가 났다. 
운진은 복권 기계만 들여다 봤다. 
   잠시 후 형록이 다시 매장으로 나왔다.
운진은 눈만 돌려 형록의 눈치를 봤다.
   “그래서, 어떡할 건지 말해 보슈!”
   “얘, 얘기를 해야지, 처제한테.” 운진은 형록이 앞에서 말을 더듬었다.
   “그런 다음에?”
   “그런 다음에, 의논 해봐야지. 독립을 시켜줄 수 있으면 독립 시켜주고.”
   “어떻게 독립 시켜줄 거요?”
   “내가 가게 하나 봐 논 게 있그던? 젊은 부부가 장사 할 줄 몰라서 죽인 가겐데, 세일즈맨들이 그러드라구. 물건만 구색 맞춰 넣으면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가게라구.”
   “얼만데요?”
   “한 이십만에 쑈부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은 안 해 봤어.”
   “그걸 안 게 언젠데. 그 가게가 아직 그냥 있우?”
   “아까 탐한테 물어볼 걸 그랬지? 탐이 말해 준 건데. 탐이 그 가게를 전주인부터 이십년도 넘게 물건을 댔기 때문에 잘 안대.”
   “원랜 얼마짜린데, 형님.”
   “원래대로 하면 삼사십은 되지.”
   “씨발, 이십에 인수해서 되팔아도 일이십은 떨어지네?”
   “그렇지.”
   “담달에 계를 타는데, 형님, 반은 어디서 구한다?”
   “내가 있으면 대주겠는데, 너도 알다시피 여편네가 조가한테 몽땅 갖다바쳤다.”
   “지나간 쓸데없는 얘긴 뭐하러 하슈?”
   “조가네 건물을 경매 넣으면 나머지는 빠지는데, 그게 언제가 될 지 모르고.”
   “아, 씨발! 약 올려요? 지금 내가 내 심정인 줄 알아요? 형님만 아니었으면 내 손에 벌써 몇번 뒈졌지.”

   가게 밖에서 차들이 멈칫멈칫하다가 안에 불이 환히 켜져있는 걸 알고는 속속 주차를 하기 시작했다. 점심 때부터 몰리는 단골들이 혹시나 하고 와 보는 기색이다.
운진은 썰렁한 가게 안을 둘러보며 한숨을 쉬었다. 
   "오다한 물건들이 담주에 다 들어와야 가게꼴이 사는데... 영호, 씨발, 개새끼!"
   “라러리(Lottery: 복권) 찍어요! 생각은 그만하구!” 형록이 소리를 질러댔다.
   "오, 알았어! 오케이!" 
운진은 일부러 좋은 척 했다. 그는 그로서리쪽에 사람이 없나 보고 복권쪽으로 갔다. 
그나저나 저 형록이새끼가 은근히 거슬리네? 
뭐야... 
여태 처제 싫다더니 내숭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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