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들과의 대화
운진은 눈을 떠 보고 몸이 침대 위에 누워 있고 천장은 어두운 걸 알았다.
그는 깨어질 듯 아파오는 머리를 간신히 올려 방 안을 살펴봤다. 그 모텔방이다.
처제가 누웠을 옆 자리가 비었다.
‘처젠 어디 갔나 본데? 몇시쯤 됐나?’
침대 사이에 놓인 테이블 위의 알람시계를 보니 1:35 A.M.을 가리켰다.
그는 잠을 더 청하려 했다.
딸들을 빼앗기는 장면이 떠 오르고 가게를 빼앗기는 장면도 보였다.
조가가 남산 만한 배를 한 영란과 나란히 서서 손가락질을 하며 웃는 모습이 보였다.
운진은 악몽에 시달리며 자다깨다하다가 새벽녘에야 잠이 들었다.
어렴풋이 어디선가 셀폰 톤이 울었다.
‘내가 셀폰이 없는데?’
삐리리거리는 소리는 계속 들렸다. 그러고 보니 귀에 익은 벨소리다. ‘처제?’
운진은 손을 여기저기 더듬어 옆의 벼갯밑에 있는 셀폰을 찾아 대답했다. “여, 여보세요? 으흠!”
“이젠 아주 니가 대놓고 받는구나?” 나이 든 여자의 고함이 터졌다.
운진은 셀폰을 새삼스럽게 들여다 보고 영아의 것임을 재차 확인했다.
운진은 상대방 목소리의 주인을 짐작하려고 신경을 집중했다. 두통이 너무 심하다. “여보세요.”
“내 딸 내 놔, 이놈아!”
“아아. 난 또 누구라구. 여기 없소.”
“없긴, 썩을 놈아, 니가 납치해 가 놓고 없어?”
“말 만들고 있네, 제기. 당신들 맘대로 하슈. 영안 여기 없으니까.”
운진은 전화기를 꺼 버렸다.
창의 커튼이 이미 환했다.
시계를 보니 아홉시였다.
‘혼자라도 나가서 열어야지.’
운진은 깨어지는 머리로 끙끙대며 몸을 움직였다. 아참! 내가 어떻게 왔지?
그는 뭘 입고 있는 지도 모르면서 창가로 달려갔다.
커튼을 제치고 밖을 보니 그의 벤즈 세단이 문 앞에 세워져 있다.
내가 술을 먹고 운전해 왔다고?
그는 비로소 자신이 달랑 팬티 바람인 것을 알았다.
그는 기억을 째내려고 문자적으로 머리를 쥐틀었다.
그가 방바닥에 흐트러진 옷가지를 주우려는데 시계 위에 종이가 하나 눈에 띄었다.
운진은 직감적으로 처제가 남겨 놓은 것임을 알았다. 타고 갈 차가 있었나?
그는 손을 뻗어 그 종이를 집어 눈 앞으로 가져왔다.
‘형님! 우리 찾지 마슈.’
모텔에서 제공하는 메모종이에 휘갈겨 쓴 형록의 필체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 둘이 잘 살아라.’
운진은 한숨을 길게 내쉬며 손을 늘어뜨려 그 종이 쪽지를 떨어뜨렸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감기려는 눈끝으로 눈물이 새어나왔다.
그러고 보니 형록이 영아를 집요하게 설득하는 장면이 떠 올랐다.
영아의 우는 소리가 들렸던 것 같았다.
그렇다면 형록이 영아를 설득해서 데려갔나 본데 그는 술에 취해서 정신을 잃었다는 말이다.
애들은 이모랑 따로 살 줄 알텐데 뭐라고 하지?
얻어놓은 아파트는?
그는 옷을 주섬주섬 주워 입었다.
운진은 영아의 셀폰을 어떻게 할까 내려다 보기만 했다. 그냥 갖고만 있으면 충전 못 하고 죽는다.
그는 그 셀폰을 집어서 연락목록을 뒤졌다.
캐리아웃!
그는 그 번호를 꾹 눌렀다.
"응, 미쓰 최!" 그의 귀에 익은 아주머니의 음성이 들려왔다.
"아줌마. 저 미스터 오예요. 다시 오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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