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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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8. 13. 08:03

   그 후로 숙희는 가면서 탈 것들이 나타나는 대로 설이와 올라갔다.
네 살짜리 설이는 아예 겁대가리가 없는 아이처럼 놀았고, 한 살반짜리 민이는 삼촌이 잡아주는 대로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매달렸다.
고-카트에서 비로소 운진은 설이를 태웠고, 숙희가 민이를 태우고 씽씽 달렸다.
   공기총으로 쏴서 표적을 쓰러뜨리면 그 실적대로 상품을 주는 코너에서 운진은 숙희의 또 다른 면을 봐야했다. 그녀는 처음 한번만 쏘아보고는 장난감 같은 공기총을 이리저리 만졌다. 
그리고 그녀는 쏘는 대로 명중 명중이었다.
관리자는 상대가 여자이니 총 만진 것에 대해 말을 못 하는 모양이었다. 다들 못 맞추도록 조작해 놓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여자가 교정시키고는 잘 쏘는 것이었다.
게다가 운진도 숙희 못지 않았다.
결국 관리자가 그만 하라면서 커다란 곰인형을 던져주었다.
   "한국에서 아빠 따라 사냥을 좀 다녔죠. 호..."
   "와아. 얼마나 잘 살았길래 사냥을... 그것도 여자분이 사냥을?"
   "아빠가 한 동안 아주 깊은 산골에서 근무하셨어요. 방학 때마다 놀러가면..."
숙희의 그 말에 운진은 어느 세상에서의 얘기인가 하고 머리를 쥐어짰다.
한 중령이 조 사단장 휘하 전방에 들어갔을 때는 마누라와 못 생긴 딸만 봤는데. 
그리고 한 중령이 정 장군 차 운전병이었을 때는 서울에서 살았는데.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세상이 있나?...' 
아이들은 상품이 늘어나니 좋아서 까무라쳤다.
일행은 가다가 발견한 벤치에 앉아 다리를 쉬었다.
   링을 던져서 빈 병 목에 걸리는 놀이에서 아이들로 하여금 맘껏 던지게 시키는 숙희를 보고 운진은 어떤 착각도 했다. 진짜로 애를 낳아 키워 본 여자인가 하고...
   숙희가 미국인 남자친구로부터 죠세핀이란 닠네임으로 불리운 세상에서 딸이 있었다. 그 딸은 원치않은 사생아로서 이름이 에밀리였는데, 사실 그녀는 그 딸을 직접 키우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잠재의식에서 딸을 연상하며 그의 조카들에게 잘 하는 것인 지도 모른다.
   운진은 숙희란 여자가 베일에 싸인 여자라고 여겼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서니는 시트에 기대어 잠들고, 마잌은 숙희의 무릎에서 잠이 들었다.
운진은 괜히 추렄을 쓰자고 고집 부린 것이 후회되고 그녀에게 미안했다.
숙희도 피곤할 텐데 좁아 터진 추렄 안에서 아이들에게 거의 양보하다 보니 다리도 제대로 뻗지 못 하고 문에 처박힌 사람처럼 불편한 자세를 취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그녀가 되려 '괜찮으세요?' 하고, 운진을 계속 챙겼다.
   한 시간반 정도 운전해서 돌아왔는데, 아이들이 잠든 바람에 어른들도 굶어야 했다.
숙희가 부득부득 우겨서 아이들을 제 집에 내려주고, 그제서야 둘은 편하게 탈 수 있었다.
   "어디서 식사라도..."
   "피곤하..."
두 사람은 동시에 말을 꺼냈다가 동시에 끊었다.
   "먼저..."
   "배는..."
둘은 말이 또 섞이고는 웃었다.
   "아, 말씀하세요."
   "아니, 괜찮아요."
   "오늘 고마웠습니다. 진짜로."
   "뭘요. 덕분에 저도 동심으로 돌아간 하루였어요."
   "..." 운진은 말에서도 숙희에게 한참 뒤지는 것을 느꼈다. 
숙희의 배에서 다 들리게 꼬르륵 소리가 났다.
두 사람은 맘껏 소리내어 웃었다.
그래서 둘이 간 곳은 짬뽕을 아주 맛있게 하는 화교출신의 중화요리집이었다.
숙희는 면발 뿐만 아니라 건더기도 다 건져먹고 나중에 운진이 기울여서 보여준 밥공기의 반도 덜었다.
   "아유우! 시장들하셨나 보다, 응?" 주인여자가 유창한 한국말로 했다.
숙희는 그제서야 수저를 놓았다. "어떡해..."
   "더 드실래요?" 주인여자가 진정으로 말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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