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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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8. 14. 05:30

   영란의 친정에서는 큰딸의 비행을 다 알고 있었다. 
영란은 친정에다가 절대 '그럴 리는 없겠지만' 이라는 단서를 붙이고, 만일 오서방이 전화하면 적당히 둘러대라고 엄포를 놨다. 
그러던 중 영란이 한번쯤은 남편에게 정말 친정에 드나드는 것처럼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가게를 닫는 대로 저녁 먹으러 오라고 남편을 불렀던 것이다. 
그 때는 영아를 시집 보내자는 의논이 구실이었다.
그 날 친정엄마의 입에서 딸의 비행을 폭로하는 욕설이 튀어나왔다. 암시적이 아닌 직설적으로.
남편이란 놈이 첫번째 남자가 아니었으며, 결혼 후에도 이놈 저놈과 두루 통정하는 것을.
그의 처갓집은 그래서 사위란 놈이 그 보복으로 처제를 욕보인 것이라고 나중에 큰딸과 난리를 쳤다...   

   영란은 회복실로 옮겨졌다. 
운진은 아내가 안정된 얼굴로 자는 것을 확인하고, 딸들이 아직 기다리고 있을 대기실로 왔다.
챌리와 킴벌리는 서로 머리를 맞대고 대기실 소파에 잠이 들어있었다.
운진은 벽시계를 봤다.
새로 두시.
애들은 이제 아파트로 가면 새삼 잠이 깨었다가 다시 들기가 어려울 테고, 운진 또한 눈 좀 붙였다 싶게 일어나서 가게로 나가야 한다.
그는 대기실 복도 벽에 설치된 공중전화로 갔다. 거기서 옐로우 페이지 전화번호부를 뒤져서 병원에서 가장 가까울 것 같은 모텔을 찾아 전화를 걸었다.
두어군데는 응답이 없었다.
길 이름상 거리가 좀 멀 것 같이 느껴진 위치의 모텔 하나는 전화 응답을 하되 열두시 이후에는 예약된 투숙객 외에는 안 받는다고 말하고 일방적으로 끊었다.
수화기를 힘 없이 거는 운진 그의 어깨에 손을 얹는 기색이 있었다.
   "응?" 운진은 조금 놀라며 돌아다봤다. 
영아가 울상과 미소를 동시에 지으며 서 있다.
   "처제! 아니, 처제가 여길 어떻게?"
   "형록씨가 형부 위로해 드리라고 해서요..."
   "응?" 운진은 형록이가 어디에 있는지 둘러봤다.
영아가 운진의 손을 잡아서 공중전화 곁의 의자에 앉혔다. "사실은... 제가 그냥 왔어요."
   "이러면 안 돼!"
   "왜요? 형부는 저를 다 잊었나 봐요?" 
   "천!... 아니."
   "언닐 저렇게 만든 조... 씨를 가만 놔두실 거예요?"
   "변호사가 아마 낼모레 이빜숀(eviction) 시킬 거야."
   "언니가 받고도 형부한테 말 안 했을 수도 있잖아요."
   "그렇다면 둘이 싸우겠지. 난 받은 적 없으니까 법대로 하고."
   "..." 영아가 조카들을 보며 눈물을 훔쳤다.
   "날 냉정하다고 하겠지만, 만일 처..."
   "됐어요!"
영아가 일어서려는 걸 운진이 붙잡아 앉혔다. "애들 좀 아파트에 데려다 줘."
   "알았어요."
   "난 그 사람 좀 지켜보려고."
   "그러세요." 
영아는 금방 풀린 기색이었다.
   그래서 운진은 영아가 조카들을 깨워 데리고 간 후 아내의 병실로 갔다.
영란은 링겔만 달고 있었다. 하다 못해 맥박기라든지 심장박동을 재는 그런 것도 없었다.
운진은 옆의 커튼이 가리워진 것을 의식하며 바퀴 달린 의자를 조심히 끌었다. 그가 조심해서 앉았지만 쿠숀에 든 스프링이 작게 소리냈다.
   "누구?" 영란이 눈을 안 뜬채 말했다.
   "나요."
영란의 고개가 돌아갔다. "선심 쓰니까 좋아?"
운진의 얼굴 근육이 굳어져 갔다. "그렇게 말할 건 아니지."
   "애들 다 꼬셔서 나한테서 떨어지게 하니까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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