킴벌리가 아빠더러 얼른 씻으라고 재촉하며 수화기를 받아갔다.
“하이, 이모. 아빠 샤워, 오케이?”
"그래. 알았어."
킴벌리가 수화기를 내려놓고, 아빠의 등을 밀어 목욕실로 갔다.
운진은 작은애에게 아주 조심히 물었다. “Are you okay? (너 괜찮어?)”
“Me? Yeah, I’m fine. (나? 응, 난 좋아.)”
“I’m sorry for all the troubles. (모든 말썽에 대해 미안하구나.)”
“It’s okay. We knew you are innocent. (괜찮아. 우린 아빠가 결백한 걸 알고 있었어.)”
“오케이.”
사실 처제를 건드리고도 강제가 아니었다는 결백을 받았으나 엄밀히 말하자면 오케이는 아니다.
아파트는 욕조에 문 다는 것이 불법이라도 되는 지. 아빠가 커튼 안에서 샤워를 시작하자 문 밖에 있었던 킴벌리가 들어와서는 변기 위에 앉아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그 동안 일어난 일들을 주욱 얘기하는데, 그 중 언니와 같이 아빠가 재판에서 이기기를 기도했다는 대목에서 운진은 그만 목이 메었다.
고맙게도 애들은 저들끼리 잘 컸다.
집안이 어수선하고 별의 별일들이 많았는데도 아이 둘 사이는 의리가 있었는 모양이다.
아비가 다 씻고 옷을 미처 안 챙긴 바람에 타올만 두르고 나오니 그 새 애들이 외출복 차림으로 문간에서 기다리고 섰다. 그리고 애들 곁에는 영아가 마악 들어서서 인사를 했다.
운진은 기겁을 하고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 뒤에서 형록의 말소리가 들렸다. “새삼스럽긴, 씨발! 피차 볼 거 못 볼 거 다 봤으면서.”
그 말을 듣고 운진은 고개를 저었다.
‘허, 뭐, 저런 놈이 있나! 희한하네.’
킴벌리가 뭘 안다고 헤헤헤 하고, 웃었다.
챌리가 '왓? 왓? 하고, 묻는 소리가 들렸다.
운진은 옷을 부지런히 꿰어입고 방을 다시 나왔다.
영아가 꾸깃꾸깃한 누런 봉지를 식탁 위에다 놨다.
두툼한 부피가 보나마나 돈이 분명했다. 보나마나 형록에게 빌려준 돈을 가져온 모양이다. 그 동안 장사를 뭘 얼마나 했다고 벌써 그 돈을 만들어...
“어, 저기, 우리 애들이 나가 먹재서 나가는데, 가, 같이 갈래?” 운진은 말을 더듬거렸다.
“누구보고 말하는 거유? 나요, 여기요?”
형록이 실실 웃었다. "부뚜막에 먼저 올라가고 호박씨 깐 주제에 내숭은!"
영아가 눈을 흘기며 형록의 팔을 툭 쳤다.
운진은 형록의 말마따나 새삼스럽게 영아를 똑바로 못 보고 그녀 앞을 빠르게 걸어 지나쳤다. "그리고 저 돈은 도로 거둬. 장사부터 하라고."
형록이나 영아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면, 떼먹던가 말던가." 운진은 그렇게 말해버렸다.
모두들 아파트 주차장으로 나오는데, 영란의 렠서스 차가 마악 들이닥쳤다.
제일 먼저 당황한 사람이 영아였다.
그러나 차에서 내리던 영란이 어머! 하고 놀랬다.
그리고는, “아, 아니네!” 하며, 형록을 외면했다.
“누님이 여긴 웬일이슈?” 상대하기 만만한지 형록이 이죽거렸다.
영란은 차림은 의외로 화사했지만 얼굴엔 기미가 밤에 봐도 잔뜩 끼었다. 희미한 가로등 불빛에도 그녀는 어딘가 병색이 완연해 보였다.
그녀는 아무 대답 못 하고 애꿎은 머리만 만지다가 운진을 쳐다봤다. “어디, 어디들 가는데, 지금?”
“밥 먹으러!” 챌리가 대신 대답했다.
“이 시간에?”
영란이 왼손목을 들여다보다가 얼른 내렸다. 그녀의 손목에는 시계가 안 보였다.
운진은 얼핏 그녀가 늘 차고 다녔었던 금줄 시계를 떠올렸다.
영아가 먼저 움직이자 아이들이 곧 따라 움직였다.
형록이, “또 봅시다, 누님,” 하고는, 앞서 가는 일행을 따라갔다.
운진은 그제서야 영란을 바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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