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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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8. 17. 04:32

   운진은 비로소 후회의 눈물을 흘렸다.
   '차라리 방사선 치료를 계속 받게 했더라면 좀 더 오래 살았을 것을!' 
운진은 아내의 명을 재촉한 놈이 저라고 대성통곡했다. 위선자. 독한 종자.
아내 영란의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지기 시작한 것이 이혼 직후라는 것을 발뺌하려고 드는 위선자에다가 아내가 더 이상 회복의 가망성이 거의 없다는 데도 수술을 감행한 놈.
이래서 인간들은 '내가 죽였다' 하고, 땅을 치는 것이다.
운진은 눈을 딱 감은 채 위스키 잔만 기울였다.
   '씨발! 이러다가 나도 위암 같은 거 걸려서 죽자!'
   이래서 인간은 누굴 떠나 보내면 착해지나?
운진은 울음이 나오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그랬더니 정말 멈추지않고 눈물이 그리고 곡소리가 절로 나온다.
   '나를 속으로 얼마나 원망하며 아파하다가 눈을 감았을까!'
   내가 영란일 그렇게 만들었고 내가 죽인 거야.
   세상을 탓할 게 못 돼!
   영란아!
   영란아!

   리빙룸 소파에 배를 다 내놓은 채 널부러져 있는 운진을 지켜보는 눈동자가 열개 있다.
형록과 영아와 챌리와 킴벌리와 그리고 영호 그렇게.
   "It's been 3 days. (벌써 삼일째야.)"
   챌리가 한숨을 쉬었다. "He only had whiskey. (위스키만 마셨어.)"
킴벌리가 조그맣게 '우와아!' 하고, 탄식을 내뱉고는 다이닝룸 의자에 가서 앉았다.
   "힘들었겠지. 죽어가는 누님 모습을 끝까지 다 지켜본 냥반이니까. 가뜩이나 마음 여린 냥반이 어찌 견디었을까? 바퀴벌레도 못 잡는 냥반인데." 
   형록이 그래도 제일 가깝다고 바닥에 떨어진 담요를 집어서 운진의 배를 덮어 주었다.
   그리고 그가 방바닥에 앉았다. "이 냥반이 참... 초인간적이야... 그 험한 꼴들을 다 보면서도 속에다가만 담고 혼자서 끙끙 앓고 다니더라구... 맨날 보면 가게 뒷방에서도 술에 취해 이런 모습으로 들켰지." 
모두 말이 없다.
   "그나마 리꺼 스토어 안 했더라면 버는 돈 술에다 다 바치고 알거지로 살았을거래. 술에 잔뜩 취해서는 나 보고 형록아 넌 혼자 살아라 뭐 하러 결혼하려고 하냐 그냥 혼자 사는 게 젤 속 편하다 맨날 그랬지."
영아가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웃는 걸 한번이라도 본 적 있나 남들처럼 그 흔한 골프를 치나... 누굴 만나러 다니길 하나... 눈 뜨면 가게에 나가서 하루 종일 술 팔고 노는 날이면 하루 종일 술에 쩔어 있고... 시팔! 참, 형 팔자도 조옺 같소! 술이라도 들어가야 잠을 자고... 헛헛헛!"
형록이 벌떡 일어서다가 영호와 부딪칠 뻔했다.
   "에이, 조심하잖구, 씨발!" 영호가 형록을 슬쩍 밀었다.
형록의 주먹이 영호의 코 앞에 가서 멎었다. "내가 삼청교육대 조교 출신이다. 너 같은 놈은 거기에 데려가서 진짜 반 죽도록 만들어야 정신을 차릴까 말까지? 오늘 이후로 내 앞에서 눈 깔아라. 죽는다. 알았냐?"
   "어, 얼... 씨구?" 영호는 말은 했지만 이미 기가 죽었다.
   "그리구. 난 사람 볼 줄을 안다. 이 형님... 여기 술에 취해서 세상 모르는 이 냥반을 조심해라. 난 안다. 바로 이런 사람이 살인을 한단다. 짖는 개가 안 물고 안 짖는 개가 무는 것처럼 이렇게 속으로 끙끙 앓는 사람이 팩 돌면 감당을 못한단다. 명심해라. 예비 처남씨."
   "쳇!" 
영호가 습관처럼 입 밖으로 빈정거림을 표현했지만 겁 먹은 기색이다. 인간이 바보인 척 그리고 겁장이인 척 굴면서도 슬쩍 치는 것이 급소를 때리고 사람의 숨을 못쉬게 했다.
영호는 지금도 총부리가 머리통에 닿았던 것만 상기하면 오줌을 쌀 것 같다. 
그리고 저렇게 만취해서 인사불성 같은 이가 조가를 보러 가자 해서 보인 행동도 겁난다. 조가도 한주먹 하던 자인데 손도 못써보고 매형에게 목을 잡혀서는 대롱대롱 매달려 똥을 다 쌌다.
매형이란 이는 그렇게 해서 조가로부터 가게를 완전히 빼앗았다.
오운진이란 이는 골프 선생을 만나서는 말 딱 한 마디로 돈을 게워내게 했다. 나는 지금 눈에 뵈는 게 없다. 죽어가는 내 마누라 옆에 묻어주기 전에 처먹은 거 다 내놔라!...
그런 이가 연 삼일째 위스키만 마셔대고 정신을 잃었다.
   열 개의 눈동자는 죽은 듯이 자는 운진을 지켜보기만 한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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