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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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8. 17. 04:31

   영란은 버블 배쓰를 잘 하고, 남편 그러니까 전 남편 앞에서 알몸에 가운을 걸쳤다.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침대에 뉘어지면서 영란이 미소를 지었다. "졸려."
   "그래."
   "나 잠들면 가게에 가?"
   "그래."
그리고 영란은 그렇게 잠이 들었다. 남편의 팔을 베고 긴 잠에 빠졌다.
남편이 놓아준 몰핀 주사를 맞고. 
남편이 해준 마지막 버블 배쓰를 받고. 
그녀는... 그렇게 조용히 갔다. 고통없이...
그녀의 얼굴은 몹시 야위었어도 미소를 짓고 있었다.
운진은 그녀의 상반신을 안고 오열을 터뜨렸다.
저 아랫층에서 영호가, "이 씨발놈이 집엔 왜 또 와 있어!" 하고, 중얼거리면서 올라왔다.
   "어?"
   그는 문 앞에서 굳었다. "누나..."

   영란은 그녀가 언젠가 말한 그대로 화장되었다.
그녀가 여동생에게 그랬다고. '나는 죄가 많은 년이야. 나 죽으면 남편에게 부끄럽고, 날 아는 이들이 내 무덤에 와서 침 뱉을까 봐 두려워. 그러니까 나 죽으면 화장해서 내 뼈가루를 아주 먼 바다에 뿌려줘,'
   운진은 아주 먼 바다까지는 못 가고, 집동네에서 차로 한시간 정도 떨어진 베이 브릿지 밑의 공원으로 가서 작은 모터 보트를 세 내었다.
그 배에 영아가 같이 탔다.
   "추운데 왜 나왔어. 홀몸도 아닌데."
   "그래두 언니 마지막 가는데 봐야죠."
   "다행이라고 봐야 하나..."
   "고통 덜 하고 가서요?"
   "..."
운진은 뼈가루를 한줌씩 물에 뿌리다가 반쯤 남은 것을 처제에게 주었다.
영아가 알루미늄 병을 받아서는 잠시 들었다가 통채로 물에 부었다.
물기 머금은 찬 바람이 하얀 가루들을 빼앗아 달아났다. 
가루들의 일부는 물 표면에 가서 달라 붙었고, 나머지는 얕게 떠서 흩어졌다.
   "사람... 이렇게 허무하게 갈 걸, 뭐 그렇게 힘들게..." 
운진의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영아가 보았다.
   "그래도 언니의 마지막을 형부가 지켜주었으니... 언니는 비록 갔지만 좋았을 거예요."
   "..."
   "최근에 와서는... 형부한테 미안해 했어요."
   "내가 목욕 시켜줄 때, 그러더라구. 미안하다구."
   "그랬다면서요." 말하는 영아의 눈에서 새삼 눈물이 흘렀다.
운진은 모터 보트의 엔진 시동을 걸었다.
   저 멀리 물가에 선 이들이 모터 보트가 접근하자 모여 들었다. 
아마도 스무 명 정도는 되나, 챌리와 킴벌리가 아빠에게 가만히 와서 안았다. 
형록은 영아에게 외투 하나를 더 걸쳐 주었다.
영호가 멍청히 서서 물을 하염없이 보고 있다가 고개를 떨구었다.
영란의 모친은 그녀의 자매들에게 둘러 싸여 새삼 울음을 터뜨렸다.
좀 떨어진 곳에 왕년의 최 장로가 혼자 서 있다가 돌아섰다.
형록이 운진에게 악수하자고 손을 내밀었다.
운진은 쓰게 웃으며 그의 손을 잡았다. "나 머리 좀 정리되면 얘기하자."
   "가게 안 들어먹을테니까 염려 말고 푹 쉬슈. 난 안 믿어도 처젠 믿을 거 아뇨."
형록의 그 말에 영아가 울다가 그의 팔을 툭 쳤다. 그리고 그녀가 형부의 눈치를 봤다.
영란의 번개수법 유언에 따라 그녀에게서 땡전 한푼 못얻은 친정식구들은 발걸음을 돌렸다. 
영호는 누이의 뼛가루가 다 사라지고 만 물을 하염없이 보며 울음 섞인 한숨울 토해냈다. "그래도 막판에 매형이 곁에 계셔줘서 좋은 기억 갖고 갔..."
형록이 다들 보는데 영호에게 주먹을 들어보였다. "입에 침이나 바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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