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란이 잠든 것을 확인하고, 운진은 몸을 가만히 일으켰다.
그가 받쳐 주었던 팔을 빼려는데, 그녀가 흠칫 놀라는 것이다. 그래서 운진은 도로 누우며 팔을 더 밀어 넣었다.
"자는 줄 알았어."
"자기, 나 밉지?"
"뭐?" 운진은 그 다음 이어지는 말을 생략했다.
"..."
영란은 아마도 잠꼬대인지 아니면 잠꼬대인 척 마음의 말을 했는지 조용하다.
운진은 형록에게서 받은 감동대로 실행하기로 한 것이다. 남의 자식도 받아들이는...
저 아랫층에서 문을 세게 닫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 자식은 누나가 환자인데도 조심을 안 하네! 참 덜 떨어진 자식..."
운진은 움직일까 하다가 처남이 보든말든 무슨 상관이냐 싶어서 눈을 감았다.
"어? 뭐야... 어? 아니잖아."
영호가 방문 앞에서인지 중얼거렸다. "저 인간이 왜 왔지?"
운진이 움직이려는데, 영란의 손 하나가 그의 가슴에 얹어졌다. "자기, 그냥 있어요."
"응? 깼어?"
그걸 영호가 본 모양이다.
"어이, 시이!" 소리와 함께 후닥닥 달아나는 기색이 들렸다.
영란이 한 말처럼 그녀의 친정모가 죽을 때가 되었는지 웬일로 떡국을 끓여서 가져왔다.
운진이 영란을 침대에 기대어 앉히고, 떡국을 한수저씩 떠 넣어주었다.
영란의 손이 남편이 수저를 가져올 때마다 그 손을 쥐었다.
오히려 영란의 친정모와 그녀의 남동생 영호가 낯선 이방객처럼 구석에 가 서 있다.
"영호. 너 저번 날 한 말이 뭐야?"
영란이 동생 보고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조가가, 뭐 어쩌고 했잖아."
"어, 그게... 그게 어떻게 된 거냐 하며는..."
영호가 우물쭈물하니까, 영란이 남편의 손을 밀었다. "너 또 무슨 짓 했어!"
"그, 그게..."
"너 챌리아빠한테 뭐 어떻게 하게 했다 그랬잖아!"
운진은 못 듣는 척 하고, 수저질을 계속하려 했다.
"자기, 잠깐만."
영란이 침대 시트를 들추고 내려가려 했다. "너 수상해."
영호가 후닥닥 도망쳤다.
그가 순식간에 앞 문을 부서져라 처닫고 사라졌다.
"엄마! 저 새끼 핸드폰 걸어서 당장 오라고 해! 아니면, 나 저 새끼 죽이고 나도 죽을 거야! 얼른 전화 해!"
"이 봐. 진정해."
"가만! 기억나. 저 영호새끼가 조가한테 뭘 어떻게 했나 봐. 근데 그게 자기한테 가도록 했대. 아마 그렇게 말했을 거야."
"놔 둬."
"빨리 전화 안 해, 이 여자야?"
영란이 떡국 몇 수저 먹고는 기운이 나는 모양이다. 예전의 그 앙칼진 고함이 터졌다.
그녀의 모친이 방을 서둘러 나갔다.
"뭘 어떻게 했든 나 하고는 상관없어."
"저 새끼가 아직까지 자기한테 감정이 남아있거든."
"그러라구래. 난 상관 안 해."
운진이 수저를 뜨려는데, 영란이 가볍게 밀었다. "맛 없어. 맛 없는데 자기가 줘서 먹었을 뿐이야. 에이, 여편네, 떡국이라고 드럽게 맛 없네."
"그냥 정성 봐서 좀 더 들지?"
"정성도 안 들였을 거야, 저 여편네."
운진은 아내를 부축해서 도로 뉘었다. "눈 좀 부쳐."
영란은 여동생네를 찾아가서 난리 피우고 온 것을 남편이 아직 모르나 했다.
아니면, 어차피 끝나는 마당이니 그래 봤자라 해서 잠자코 있는 건가 했다.
"애들은 내가 미운가 봐."
"아직 뭘 모르고 어리잖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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