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1

pt.1 3-1x021 20년의 회상

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7. 28. 03:46

20년의 회상

   여전도회방은 책상 하나가 창문 가에 놓여 있고 의자 서너개, 그리고 다 낡은 가죽 소파가 입구에 가까이 있는 게 다였다. 
숙희의 눈에 전화기가 안 보였다.
   ‘여기서 뭘 어쩌라는 거야! 아무 것도 없는데? 차라리 화장실로 가는 거였다.’ 
그녀가 돌아서서 나가려는데 방문이 밖에서 열렸다. 
숙희는 아! 하고 놀랬다. 
문을 연 사람은 어떤 여자였다. 그녀는 숙희가 아는 여자였다. 
   “언니가 어떻게...? 안녕하세요!” 숙희는 그 여자에게 인사를 했다. 
   “응. 우리 동생이 가 보라구 해서.” 
   그 여자가 옷 하나를 내밀었다. 그 옷은 얇은 봄철 스웨터였다. “우선 이걸루 갈아 입어. 젖은 옷 입고 있으면 감기 걸려.”
   “근데, 스웨터만 어떻게. 헤, 참. 다 비칠텐데요…” 
숙희는 그제서야 자신의 윗옷이 물에 펑 젖어 속살이 다 비치는 것을 알았다. 
허걱!   
여태까지 다 젖었었잖아! 그렇다면 아까 그 남자가 더 많이 봤겠다. 와하! 말이 입었다지 다 비치네! 
숙희는 새삼 늦게나마 젖어서 달라 붙은 옷을 손가락으로 집었다.
   “그래두 젖은 것보단 낫다?”
   “그래두...”
밖에서 노크소리가 났다. 
숙희는 얼른 스웨터를 받아 새삼스럽게 앞을 가렸다. 
여자가 문을 조금 열고 내다보더니, “응, 가져왔어?” 하며, 팔 하나만 내밀어 밖에서 무언가를 받아 들여왔다. 
들어온 것은 마른 타올이었다.
   ‘세상에, 누군지 타올은 또 어디서 났대?’ 숙희는 은근히 반가왔다.
여자가 타올을 숙희에게 주었다. “내 동생이야, 아까 걔가.”
   “아아. 그 학교 다닌다는? 언니가 늘 말씀하시던?” 
   숙희는 타올로 머리부터 물기를 딲기 시작했다. “타올은 어디서?”
   “내 동생이 목사관에 갔다 왔어. 그러더라구, 갔다 오겠다구.”
   “고맙네요. 정신이 하나도 없네, 헤...”
   “저기 전도사님 방에 전화가 있는데, 거기서 집에 전화 할래? 누구보구 옷 가져 오라구?”
   “그냥 집에 갈래요. 어차피 이래 갖고는 연습실에도 못 들어가죠.”
   “그래, 그렇네.”
   “오늘 최종 연습인데, 빠지면 지휘자님이 싫어하시겠죠?”
   “헐 수 없지, 뭐. 사정이 이런데.”
노크소리가 또 났다. 
운서가 문을 조금 열었고, 이번에는 악보가 들어왔다. 
숙희가 그 여자 너머로 보니 아까 그 남자가 돌아서서 가는 뒷모습이 보였다.
   “악보네? 새로 카피했나 봐. 뜨뜻하네?” 운서가 숙희에게 악보를 넘겼다.
   “제껀 물에 빠졌어요. 바깥에.”
   “아아. 그래서 걔가 카피를 했네.”
숙희는 그럭저럭 물기를 다 딲고 나니 한기가 조금 덜했다. 그녀는 백에서 빗을 꺼내 빗고 리본으로 대충 묶었다. 그리고 스웨터를 걸치니 젖은 옷도 가려지고 한기가 전혀 안 들었다. 
   그래서 숙희는 그날 집에 안 가고 남아서 연습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녀는 찬양 연습 도중에 그와 눈이 마주치면 가벼운 목례로 고맙다는 표현을 했다. 
그러면 그는 그럴 때마다 볼이 빨개져서 얼른 앞을 보곤 했다.
그가 맡은 파트가 베이스였는데 바리톤 음성이 괜찮게 들렸다.
그 날 성가대는 여러 번 맞춰 본 끝에 악보 한권을 마스터 할 수 있었다.

   연습이 끝난 후, 숙희는 운서언니의 남동생이 그 날 연습에 처음 나온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노래 실력이 조금 있어서 누이가 성가대에 나오라고 종용했는데, 학교 다니랴 친척네 뭐 하는 가게에서 일하랴 그리고 일요일 하루 쉬는 날은 하루 종일 자랴 짬이 도저히 안 나서 대답만 했다가 마침 비 와서 가게가 공치는 김에 그리고 일부 학교들이 굳 프라이데이라고 금요일을 쉬는 김에 교회에 온 것이라고.
숙희는 친절한 남자네 하는 인상만 가지고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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