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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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7. 30. 04:47

   운진은 조금 부끄러워진 김에 자리에서 일어나 뒷문으로 나갔다. 
그가 얼음에 든 캔을 뒤지는데, “아니, 누군 성가대에 안 있나? 아니, 그리고, 누군 왕년에 명동 뒷길에서 술 한잔 꺾고 목청 안 올려봤나? 뽜브 티내고 있네, 정말!” 하는 성렬의 빈정거리는 말소리가 들렸다. 
   ‘아, 십할놈, 진짜 보자보자 하니까! 뭐 저런 게 있어!’
운진은 손에 쥔 맥주캔을 단숨에 비우고 빈 캔을 우그러뜨려 멀리 풀 숲으로 던졌다. ‘저 새끼가 내가 숙희씨랑 데이트 하는 게 배가 아파서 계속 씹네! 안 되겠네, 저대로 놔 두면!’
운진이 마악 집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저기요!” 하고, 앞을 가로막는 여자의 음성이 있었다. 
이 집의 그 딸이었다. “저 사람이 청년회 회장인가 본데, 미스터 오를 왜 저렇게 험담해요?”
   “이유가 있어요.”
   “아유, 뭐 저런 사람을 회장으로 뽑았어요? 유치하네.”
   “친했었는데, 제가 어떤 여자랑... 데이트하는 기색이니까.” 운진은 거의 처음 보는 여자한테 쓸데없는 말을 한다고 여겨져서 말하다 말았다.
   “아하, 질투심에서?”
   “글쎄요...”
   “미스터 오 취하신 것 같은데, 만일 다투면 그 쪽이 말을 들을 걸요? 술 먹고 주정했다고?”
   “그래요? 그럼, 그냥 가죠. 소란 피우기 싫고. 초대 해주신 장로님께도 실례고.”
   “그렇잖아도 아빠가 나가 보라 하셔서…”
   “아하. 그럼, 안녕히 계십시요. 장로님껜 인사 못 드리고 갑니다.”
   “네, 잘 가세요. 성함이... 아까는 장난으로 소개해서 잘, 못들었어요.”
   “녜, 오, 운진입니다.”
   “전 최영란이라고 해요. 조심해 가세요.”
그렇게 운진은 영란과 처음 정식으로 조우했다.

   이틀 후, 방과 후에 삼촌의 가게에서 일하는 운진을 숙희가 찾아왔다. 
운진은 크리스마스 추리로 파는 소나무들을 옮기고 있었는데 그녀가 뒤에서 옆구리를 쿡 찔렀다. 
억! 하고 돌아본 운진은 숙희의 얼굴이 밝지 않은 것을 보고 생각을 곰곰히 해봤다.
그녀의 입에서 이 한 마디만 나왔다. “술 먹지 마요, 네?”
그리고 그가 미처 변명할 사이도 없이 숙희는 가버렸다. 
   같은 주의 일요일날 숙희가 성가대에도 참석 안 하고 예배도 빠졌다.
운진은 집에 와서 개를 데리고 그녀의 집동네 주위를 빙빙 돌았다. 
멀리서 보니 그녀의 차가 계속 안 보였다.
일요일인데 그리고 쉬는 날일 텐데 어디를 갔을까... 
행여 수상한 눈치를 느끼고 누가 경찰이라도 부를까 봐 운진은 그녀가 사는 동네의 골목을 나왔다. 
그가 큰길을 가로 질러 건너려는데 숙희의 파란색 일제 혼다 차가 다가와서 섰다. 
   “여기서 뭐 하세요?” 숙희가 차 안에서 고개만 내밀고 물었다. 
   “오, 숙희씨! 오늘 왜 교회 안 나왔어요?” 운진은 반갑게 물었다. 
   “어디 좀 갔다 올 일이 있어서. 왜요? 저 기다렸어요?”
   “예. 무슨 일이 있나 하고...”
   “무슨 일이 있죠. 아니, 있었죠.”
   “예? 뭔데요?”
   “운진씨가 술에 취해 노래를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부른 거.”
   “어우. 사실은 그게요, 변명은 아니지만, 어떻게 된 건가 하문요.”
   “변명 잘 하셔야 돼요. 아니면, 저 이제 앞으로 운진씨 안 만날 거예요. 챙피해서.”
   “어, 아아참, 저기요. 미안해요. 실수였어요.”
   “미안해요? 그냥 단순한 실수였어요?”
   “예. 빈 속에 술이 쪼끔 들어가서 그만. 앞으론 안 그럴 게요.”
   “호호호! 사과도 참 쉽게 하시네. 정말이죠, 이번 만이죠?”
   “예! 근데 어떻게…”
   “어떻게 알았냐구요? 다아 내 레이다망에 잡혀요.”
   “그렇네요.”
   “전화, 할게요. 가세요.” 숙희가 그렇게 말하는데 좋은 낯은 아니었다.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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