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요. 숙희씨를 좋아하는데요, 좋아는 하는데요, 능력이 없어요. 잘 살게 해 줄 아이디어가 없어요. 저랑 결혼하면 고생만 직사하게 할 거예요. 근데 숙희씨가 좋아요. 좋은데, 지금 저 처지가 막막하니까, 저도 답답해요. 누가 저 같은 놈한테 딸을 주겠어요? 아무 능력도 없는데.”
“자신을 가져요. 남자가 패기도 없어요! 에이구, 정말 그러면 아무도 운진씨 안 봐요. 그래도 남자답게 당당해 봐요. 네?”
“결혼은 현실예요. 알아요? 꿈일 수도 있는데, 그니까, 결혼생활은 꿈 같이 해야 하는데, 밥상에 올라오는 끼니는 현실이예요. 꿈으로만은 배가 안 부르죠.”
“행복하면 안 먹어도 배부를 걸요?”
"환상 속의 세계에서나 안 먹어도 배부르겠죠. 현실은 현실입니다."
"현실에서니까 환상을 할 수 있는 거 아녜요? 환상에서는 현실을 느낄 수가 없죠."
“근데, 친구들, 아니, 제 사촌들을 보니까, 현실에 부딪혀 어쩔 줄을 모르더라구요. 아기 입에 들어갈 분유는 현실이거든요. 그 현실은 돈이 가져다 주는 거예요. 돈은 직업이고. 전 뭘 해야 좋을 지 모르겠어요. 숙희씨에게 허풍을 떨 수도 없고. 현실은 답답한데.”
“공부부터 마치세요. 얼마 남았죠?”
“두달이요. 지금 알바이트 하는 것 같고는 자동차 개스값도 못 내요. 그리고 우리 부모님이 제 학비를 대주실 것 같지 않아요. 한국에 있는 누님한테 돈이 그럭저럭 많이 갔는데, 매형이 시기를 잘 못타서 날린 것 같애요. 누님 이혼하고, 내년에 미혼자녀초청으로 들어와요. 애들 데리고... 그리고 우리 집을 내놓았습니다. 지난 번에 인수한 가게를 속아 샀나 봐요. 매상도 안 보고 사람만 믿고 사셨는데, 매상이 말한 거에 반 밖에 안 되나 봐요. 매상을 근거로 매매 계약을 한 게 아니기 때문에 고소도 못 하고. 그 쪽의 양심만 믿는데, 참, 나아, 당한 우리만 바보죠. 이래저래 저는 어느 누구한테도 마땅한 신랑감이 못 됩니다."
"..." 숙희는 이제 운진으로부터 직접 거절 당하는 판국이다.
"어떻게 하죠? 숙희씨 동생이 새치기를 했는데 저는 숙희씨를 구제할 능력이 없습니다.”
운진을 바라보는 숙희의 눈이 촉촉히 젖어들었다. “운진씬 참 착한 사람이예요.”
“착한 걸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읍니까...”
“힘을 내세요! 지금 누가 누구보고 힘 내라하는 건 지 모르겠네? 제가 운진씨한테 낙담하고, 운진씨가 저를 위로해 줘야 되는 거 아녜요? 우린 거꾸로 됐죠?”
“그러네요. 미안합니다. 저는 그냥 생각만 굴뚝같고 실현 가능성은 희박하니까 핑게 김에 숙희씨한테서 도망쳤었어요. 절 바라보시다가는 시간낭비나 하시니까.’
“그래서 제가 테스트를 했죠.”
“테스트요?"
"네."
"저를요?”
“네!”
“가만. 혹시이?’
“혹시, 뭐요?”
“혹시, 김형이 중간에 낀 건 아니겠죠!”
“김 선생님 아이디어였어요. 그 분이 운진씨를 한번 떠보신다고.”
“그럼, 황하고는 전혀...”
“아뇨, 한번은 만났어요.”
“녜? 어디서요!”
“왜 그리 놀래요? 뭐 설마 하니 어디 호텔에서 하룻밤 지냈을까 봐요?”
“호텔에서 하룻밤! 농담이라도 그런 단어 쓰지 마쇼, 예? 어디 여자 입에서 호텔이란 말이 술술 나와요!”
“와아! 운진씨 보기처럼 순진하시네! 운진씬 호텔 안 가 보셨어요? 난 많이 가 봤는데.”
“호텔... 커피 샾?”
“호호호호!”
"어이, 진짜! 뭡니까! 예?"
숙희의 얼굴이 비단 추워서만은 아니게 빨개졌다.
그녀가 호텔을 보통 많이 가 본 여자인가.
그녀가 최근 들어 셐스 서비스를 마지막으로 한 게 발렌타인스 데이 때이다.
그녀는 이제 그런 생활을 접고 싶다.
그녀는 돈도 싫고 무의미한 셐스도 싫고 이제 한 남자의 그늘 속에 들어가 살고 싶다.
그녀에게 돈은 있다. 그런데 그녀가 어떤 면에서 만만히 보고 대하던 오운진이란 사내가 전혀 뜻밖에도 변했다.
그녀는 슬퍼지려는 마음을 누르려고 자꾸 웃었다.
그가 말은 재미있게 그리고 장난처럼 하지만 엄밀히 말하라면 거절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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