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진은 숙희의 웃음이 끝나기를 기다려 말했다.
“근데 황하고는 만나서 무슨...”
“무슨 얘기했느냐구요?”
“아, 뭐, 꼭 알려고 하는 건 아닙니다.”
“궁금하세요?”
“어, 예. 근데, 뭐, 꼭은 아니구우...”
“말을 바로 하세요. 궁금하시냐구요.”
“어, 예. 조금.”
“남 데이트한 게 왜 그리 궁금하세요?”
“그냥 한번으로 끝난 겁니까?”
“아뇨?”
“예? 한번은 만났다면서요! 아녜요?”
“호호호호! 와아, 운진씨가 막 질투를 내니까 기분좋다아! 궁금하고 질투나세요?”
“궁금도 질투도 아니고, 그냥 기분 나쁘네요.”
“왜죠? 왜 남 데이트한 게 기분 나쁘세요?”
“상대가 황이니까 기분 나쁘죠.”
“이상하시다. 미스타 황은 운진씨 칭찬을 많이 하던데, 운진씨는 미스타 황을 헐뜯으시네요?”
“예? 황이 절 왜 칭찬합니까? 그럴 리가 없죠.”
“금, 제가 거짓말한다구요?”
“예? 아, 아뇨! 아, 이거 오늘 계속 말이 빗나가네.”
“호호호. 운진씨!”
“예예.”
“미스타 황이 제 동창 친구랑 약혼해요. 그래서 미스타 황이 함께 저녁을 먹자고 했어요.”
“아니, 그 새낀, 어, 죄송합니다. 으음, 지는 약혼할 여자가 있었으면서, 그럼, 왜 숙희씨한테 찝쩍거린 겁니까? 진짜 나쁜 놈이네, 거어!”
“그게 아니구요. 제가 얼마 전에 미스타 황한테 제 동창을 소개시켜 줬어요. 혹시 알아요? 그러면 저를 좀 덜 귀찮게 할지? 그래서.”
“아니, 그런 일을 뭐하러 해 주세요, 그런 놈한테?”
“호호호. 미스타 황이... 아이고오, 차암. 이런 말을 다 해드려야 하나? 운진씨가 저랑 삐쳐서 따른 교회로 나간다는 얘길 듣고 미스타 황이 정식으로 데이트를 신청했어요.”
“그럴 줄 알았지. 그래서 만났다 이거죠?” 운진이 숙희를 꼬나보듯 했다.
“네. 만나서 정식으로 날 귀찮게 하지 말라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들어요? 들을 리가 없지이.”
“그랬더니, 그러면 저보고 아는 여자 하나 소개해 달랬어요, 대신.”
“어쭈우? 한술 더 뜨네, 자식이?”
“그래서 마침 아는 동창 하나를 소개했는데, 남녀는 천생연분이란 게 정말 있나 봐요?”
“예? 아니, 그럼?”
“네에! 두 사람이 처음 만난 날부터 눈이 뿅가더니, 거의 매일 같이 데이트하고, 이번 봄에 양쪽 집에 인사가더니, 올 여름에 약혼하고 내년 봄에 결혼한대요. 우습죠?”
“예? 허어.”
운진은 할 말이 없었다.
‘졌다, 황한테. 그 자는 결혼을 해버리는구나. 그것도 숙희씨의 친구와... 난 뭐야. 빈껍대기 밖에 없는 주제에 황을 헐뜯고. 만일 내가 숙희씨와 결혼한다면 두 친구가 비교될 텐데. 황네는 우리보다 백배나 잘 살지. 난 아무 것도 없고. 숙희씨가 뭐가 돼...’
둘은 걸음을 멈춰서 새삼 주위를 둘러보았다.
대체 어디까지 걸었는지 전혀 알지도 못 하는 시가지까지 왔다.
길가의 간판과 도로 이름표를 보고 둘은 놀랬다.
도저히 다시 걸어서 집에까지 갈 엄두가 나지않았다.
누구한테 연락을 해서 차 태워주러 오래나 하고 둘이 의논하다가 김형한테 공중전화에서 전화를 했다.
"얼래? 두 사람 따로따로 끝낼 것처럼 굴더니?"
김흥섭이가 차를 몰고 와서 던진 첫말이었다. 그리고 그에게서 일종의 체념 같은 빛이 보였다.
숙희는 여태 안 그래 왔으면서 이날 따라 운진에게 매달리고 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일단 고비를 넘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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