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1

pt.1 9-8x088

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8. 9. 08:38

   헤드라잇의 모양을 보니 사다리꼴인 것이 과거 영란이 잠깐 탔다가 영호에게 준 애큐라다. 
그 차는 단숨에 달려와 운진의 앞에서 급정거를 했다. 
환한 불빛에 거의 장님이 되어 운진은 차에서 누가 내리는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문이 탕 하고 닫히는 소리가 났다.
운진은 옆으로 몇발짝 피해서 불빛에서 해방됐다. ‘역시 영호새끼네!’
영호가 차에서 내려 인도로 올라섰다. “오늘은 매형이구 좆이구 없어, 씨발!”
운진은 아내의 수작이란 직감이 들었다. 
   ‘흥! 지 동생을 시켜서 남편을 때려주라 했겠지. 가게를 넘겨주마 하는 미끼로. 그 여자의 머리에서 그런 아이디어 밖에 더 나올 게 없지.’ 
운진은 한자리에 꼿꼿이 서서 다가오는 영호를 똑바로 응시했다. 
영호에게서 술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흥! 싸움을 걸고 나중에 술에 취해 실수했다고 둘러대겠지?’
운진은 양 옆으로 내린 두손에 힘을 주었다. ‘숙희씨 같으면 어떤 자세부터 취할까?’
순간적으로 영호가 주먹을 날렸다.
순간적으로 운진은 옆으로 움직여 그 주먹을 피했다. 
두번째의 주먹도 반대쪽으로 움직여 피했다. 
   ‘새끼가 다행히 술취했구나. 둔하네.’
또 하나의 주먹이 얼굴을 향해 날아온다고 느끼며 운진은 눈을 감으며 발을 들어 차는 시늉을 했다. 마치 소가 뒷걸음질 치다가 쥐를 밟는다는 말처럼 운진의 발이 영호의 배를 찼다. 아니. 
운진의 그냥 들려진 발에 달겨들던 영호가 부딪혔다. 운진은 발로 영호의 배를 찬 반동에 뒤로 밀려 나가 떨어졌다. 영호가 조금 크면서 몸무게도 상당히 더 나가기 때문이다.
어구구! 하는 비명은 오히려 영호쪽에서 났다.  
운진은 시멘트 바닥에 손바닥을 긁히며 보기 좋게 미끄러졌다. 얼른 남은 한 손으로 얼굴을 더듬으니 코 주위가 미끌거린다.
   ‘아, 십할! 코피 터졌네!’ 
운진은 이판사판이다 싶고 언제고 한번은 겪었어야 했다는 심정으로 일어서서 허리를 구부리고 있는 영호에게 달려갔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발을 날려 영호의 머리를 대충 겨냥해서 걷어 찼다. 
억! 하고 영호가 옆으로 돌았다. 
운진은 발끝에 느껴진 뭉클한 촉감이 뭘까 궁금하기도 전에 가게를 향해 뛰었다.
그가 가게 문을 열면서 행여 영호가 따라 오나 하고 뒤를 보니 영호가 피투성인 얼굴을 하고 가게 건물 앞 지붕의 기둥을 잡으려고 허우적거린다. 
   ‘와, 십할, 내가 저 새끼 어딜 찬 거야!’ 
어쨌거나 운진은 가게로 뛰어 들었다. 이제 아내와 따질 일이 생겼다.
그는 화장실 거울에다 얼굴이 들이대고 자세히 살폈다. 
다행히 코끝만 긁혀서 피가 나고 큰 흉은 아닐 것 같았다.
영호는 가게 안까지 따라 들어오지 않았다.

   운진은 멍하니 한참을 그렇게 서서 가게 사무실의 전화기를 들고 갑자기 생각 안 나는 처제의 셀폰 번호를 기억해 내려고 애썼다. 언니 영란이 아이들 차 문제를 동생 영아에게 전적으로 맡기며 가족단체 플랜으로 빼준 셀폰... 
어제만 해도 그 번호를 걸었는데.
   '공그리 바닥에다 얼굴을 긁는 바람에 바보가 됐나? 왜 갑자기 생각이 안 나지?'
그러다가 운진은 마치 자동처럼 번호를 누르기 시작했다.
처제는 바로 나왔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오, 처제. 나 좀 태워 주러 올래?"
    이제 그의 처제에게 하는 말투는 마치 연인에게 하는 것 같다. "차를 집에 갔다두는 게 아니었어. 덕분에 오빠까지 눈치채고 나한테 시비를 걸더라고." 
   "오빤 차를 놓고 추리해 내는 머리가 아니예요. 언니가 시켰겠죠."
   "시켜..."
   "그나저나 형부가 오빠 때리셨어요?"
   "오, 참! 많이 다쳤어?"
   "뭐... 눈치만 슥 보고는 오빠 방으로 가던데요?"
   "내가 실수로 얼굴을 찬 거 같던데..."
   "형분 괜찮아요?"

'[소설] 두개의 세상 pt. 01' 카테고리의 다른 글

pt.1 9-10x090  (0) 2024.08.09
pt.1 9-9x089  (0) 2024.08.09
pt.1 9-7x087  (0) 2024.08.09
pt.1 9-6x086  (0) 2024.08.09
pt.1 9-5x085  (0) 2024.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