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2

pt.2 13-9x129

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8. 30. 00:38

   운진은 아무도 없는 집에 돌아왔다.
덩치는 커서 리빙룸의 한끝에서 게스트룸의 반대편 끝을 보면 한참 거리가 된다.
그런 집이 되려 운진의 목을 꽉 조이고 숨을 막히게 한다.
그는 부엌으로 들어가서 쓰레기통을 뒤져서 아침에 나가면서 쓸어넣어버렸던 집기들을 죄다 끄집어 내어 말끔히 씻었다.
   십할, 다행히 깨진 건 없네.
그렇게 마음 약한 사내 운진은 혼자서만 발끈하는 성질을 부리고는 하루 해도 채 안 져서 후회하고 뒷수습을 한다.

   숙희는 제레미의 저녁 초대를 처음에는 거절했다가 나중에는 마치 마지 못하는 척 따라 나섰다.
   너 왜 이러는 거야... 
또 하나의 숙희가 상사를 따라 나서는 숙희를 나무란다. 
   알아볼 게 있어서라잖아... 
남자를 따라 나서서 그의 차에 올라타는 숙희가 다른 숙희와 타협을 청한다.
숙희가 제레미의 차에 실려서 간 곳은 멤버들만 출입이 가능한 최고급 레스토랑이었다. 
차가 채 서기도 전에 두 명의 버스보이들이 달려와서 차 문을 열어잡고 아주 정중히 인사를 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옷이라도 제대로 입고 출근할 걸!
숙희는 그 날 입고 나온 옷을 얼른 내려다 봤다. 
   이건 그냥 평범한 직장 여성 차림이잖아. 이럴 줄 알았으면 향수라도 더 치고 출근할 걸!
그런데 그 레스토랑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제레미가 안내에게 가서 뭐라고 귓속말을 했다.
   "You okay? (괜찮소?)" 
제레미가 돌아와서는 아주 친절한 미소로 숙희를 마주 대했다.
숙희는 예약도 안 된 상태에서 무작정 와 보는 그런 스타일의 남잔가 하고 약간 어리둥절하고 약간 실망한 기색을 그래도 감추고 미소로 응했다. "I'm fine. (좋아요.)"
좀 전에 안쪽으로 사라졌던 안내인이 다시 나타났다.
그가 어떤 봉투를 제레미에게 아주 정중히 건넸다.
부사장이란 이가 그 봉투를 그대로 숙희에게 릴레이 하듯 건넸다.
   "For me? (날 위해서?)"
   숙희는 아주 익숙한 놀라움을 표시했다. "What is this? (이게 뭔데?)"
   "Please..." 제레미가 권하는 제스처를 보였다.
안내하는 중년의 남자가 뒤에서 보조인 양 두 손을 앞으로 가지런히 하고 섰는 아주 젊은 여자에게 어떤 신호를 보냈다. 
마치 숙희를 어디로 안내하라는 듯이.
그 젊은 여자가 얼른 나서서 숙희에게 이리로 오라는 제스처를 했다.
숙희는 영문을 모르는 상태에서 전달 받은 봉투를 가지고 그 젊은 여자를 따라갔다.
   그녀가 안내 받은 곳은 옷 갈아 입는 칸이었다.
숙희가 어느 칸으로 들어가자 젊은 여자가 커튼을 아주 조심스럽게 가려주었다.
그제서야 숙희는 얼떨결에 받았던 봉투 안을 들여다봤다.
제법 큼지막한 크기의 병이 보였다.
   이게 뭐지? 
숙희는 그 병을 마개로 잡고 살며시 끄집어 냈다. 이거는!
그 병은 아주 유명한 어느 여배우가 자신의 명성을 걸고 내놓은 아주 격조높고 아주 비싼 향수병이었다. 그리고 그 병에는 카드 한장이 칼라 고무줄에 매달려 있었다.
숙희는 그 카드를 열어봤다.
   Jeremy~ 
제레미 즉 부사장이란 이의 휘갈겨 쓴 글씨가 다였다.
   이 사람이 즉흥적으로 저녁 초대를 한 게 아니었구나! 미리 다 준비를 해 놓고... 
만일 내가 오늘 끝내 거절했다면, 아주 망신살이가 될 뻔 했겠네?
숙희는 그 향수병을 열어서 코 끝에 갖다대었다.
그리고 그녀는 서너번에 걸쳐서 그 향수를 옷 주위에 뿌렸다.
그녀는 동창 대나를 마주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걱정할 정신여유가 없었다.
그녀는 급전이 필요했고, 마치 제레미가 구세주처럼 연락 와서 일거리를 주었다.
그래서 그녀는 위험을 무릅쓰고 그의 청탁을 받은 것인데.
그녀는 나름대로 속셈이 있다고 스스로를 변명한다.
   즉 제레미를 통해서 랠프와 연락 닿으면 에밀리를 어떻게 해 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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