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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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8. 31. 01:06

   "자기, 술 하려구?" 
숙희는 제 딴에는 그래도 말을 좋게 이어보려고 그렇게 또 물었다.
   "그럼. 쏘주를 뭐 하려구 달래나? 노나, 그거 갖고?"
   "자기..."
   숙희는 들여다 보려고 쥐고 있던 메뉴를 내려놨다. "자기, 왜 그래, 갑자기?"
운진이 의자 등받이에 기대며 다른 곳을 봤다. 
에이, 십할! 소리가 그의 입에서 조그맣게 나온 것 같았다.
숙희는 제대로 들은 건지 잘못 들은 건지 판단이 서지않아 남편의 안색을 살폈다. 이 이가 갑자기 왜 이러지? 어디서 무슨 말을 들었나? "참! 애들 못 불러. 걔네들, 누구 만나서..."
   "그럼, 그냥 가자구!" 운진이 벌떡 일어섰다.
숙희는 밥은 그럼 하며 따라 일어섰다.

   둘의 언쟁은 집에 와서 결국 터졌다.
   "자기 나한테 왜 이래?" 
숙희가 참다 못해 따지듯 물었다. 
일단 그렇게 물어보고 남편의 반응이 계속 안 좋으면, 섹스를 하자고 해서 무마해야 하나...
그런데 운진의 입에서 숙희로서는 전혀 기대하지않은 말이 터져나왔다. 
   "나하고 결혼한 이유가 뭡니까?"
   "네? 아, 아니, 아니. 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머리 들이밀고 들어오듯 들이닥쳐서는 결혼하자 하고... 지금 뭐 하자는 겁니까?"
   "자기, 아니, 운진씨! 무슨 질문이 그래요?"
   "무슨 목적으로 나하고 결혼한 거냐고 물었소."
   "아니... 결혼을 무슨 목적으로 하나..."
   "내 보기엔 숙희씬 어떤 목적이 있어서 시늉으로만 나랑 결혼한 것 같소."
   "시늉으로만..."
운진이 휙 가버렸다.
리빙룸에 남은 숙희는 할 말을 잃고, 어안이 벙벙해졌다기 보다는,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았다. 
   그 날 숙희는 지하실에 얼씬도 안 했다. 운진이 가요를 있는 대로 크게 틀어놓고, 아마도 술을 그냥 막 푸는 기색이라서 일단은 마주치지말고 피하는 것이 좋겠다 싶어서.
숙희는 혹 누가 남편에게 좋지않은 정보를 주었나, 그래서 저 이가 저러나 하고 내내 연구해봤다. 
   밖에서 누굴 만났을까? 
   결혼을 목적으로나 시늉으로 한 것 같다고? 
숙희는 운진에게서 그런 말이 나오리라고는 상상도 안 했다. 
   상상도 안 했는데 그런 말이 나와서 놀랐다는 뜻이 아닐 것이다. 그의 입에서 감히 그런 말이 나오리라고는 기대도 않고 아예 깔보았는데 정작 나오고 보니 어쭈 하는 의미로 놀랐다는 뜻일 것이다.
   저런 면도 있었네?
숙희는 그를 일단 진정시키자 하고, 지하실로 조심조심 내려갔다.
   "???"
   숙희는 제 눈을 의심했다. "자기?"
운진은 술을 하고 있던 것이 아니라 노래만 크게 틀어놓고, 소파에 널부러져 자고 있었다.
숙희가 가까이 가서 살짝 건드리니 그가 응? 하고, 눈을 뜨는 것이었다.
   "올라와 자. 지하실은 개스 나와서 몸에 안 좋아." 
숙희는 그렇게 말해놓고 그가 말 안 들을 것을 예상했다.
   "애들은?" 
   운진은 눈을 부비며 말했다. "몇시요?"
   "애들 아직 안 들어왔어. 데이트 하고 먹고 들어온다고..."
   "그... 일찍일찍들 다닐 것이지."
그는 좀전까지만 해도 거칠게 말하던 것을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부드럽게 말했다. 
아무래도 딸들을 언급하면서까지 강하게 말하는 아빠는 아닌 것이다.
숙희는 주저하다가 팔을 뻗어서 남편의 손을 잡았다. "그깟 술 몇잔에 우리 운진씨도, 차암!..."
   "어, 그러네에..."
운진은 그녀에게 손 잡혀 일어나는 척 하며 그녀의 몸을 흘겨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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