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진은 만 이틀째 들어오지않는 숙희에게 최종적인 말을 하자고 마음먹었다.
첫날은 한밤중에 집 앞에서 웬 놈과 포옹을 하질 않나.
그 길로 외박해서는 아침에 속옷이나 갈아입으러 들른 것이 고작.
이제는 전화도 불통이다.
통화 중도 아니고, 신호도 안 가고, 곧바로 페이지를 하겠느냐 보이스메일에 메세지를 남기겠느냐는 안내만 나온다. 그렇다면 셀폰이 꺼져 있거나 배터리가 죽었다는 말인데...
그러나 한편으로는 어디서 사고라도 만났나 그래서 연락이 통 안되나 하는 걱정도 든다.
숙희의 백은 다른 방에 놓여져 있고, 그녀의 셀폰은 그녀의 백 안에 들어있다. 그리고 그녀의 셀폰은 백 속에서 혼자 울리다가 말다가 하면서 배터리가 소모된 상태이다.
그녀가 남자 파트너와 함께 보고서 만드는 방은 긴 테이블만 덩그라니 놓였고, 두 사람은 노트붘을 마주 대한 자세로 앉았고, 끄트머리에 올려놓아진 프린터만 혼자서 용쓰는 냄새를 풍기면서 뜨끈한 종이를 연신 뱉아낼 뿐...
전화기도 없고 외부와의 접촉이 안팎으로 일체 금지된 상태이었다.
그런 게 아니더라도 오해를 단단히 하면 나중에 풀기가 힘든데...
그냥 그 날 하고 싶지 않다고 집으로 왔을 때, 제레미가 뒤따라 오든말든 그만 두었어야 하는 건데!
괜히 돈 욕심이 나가지고 다시 덤볐더니.
숙희는 일을 하면서도 남편이 자꾸 불안하다.
그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붙잡아 놔야 한다.
그녀가 계획한 그날까지 그는 어떤 일이 있어도 곁에 있어줘야 한다.
숙희의 철야 강행군이 만 삼일째 접어드는 날.
점심 휴식 시간을 빌려서 작업실을 나온 그녀는 옆방으로 곧바로 가서는 백을 뒤졌다.
"어머! 여태 꺼져있었잖아! 배터리가 죽었구나..."
그녀는 까맣게 지워져 있는 셀폰을 들여다봤다. "차지(충전)하는 게 집에 있는데..."
숙희는 끄고 켜는 버튼을 장난하듯 연신 누르며 그 방을 나왔다.
그리고 파트너에게 물으니, 그도 차저는 집에 놔두고 다닌다는 대답을 들어야했다. 게다가 셀폰 종류도 달라서 있다한들 사용불가였다.
숙희는 갑자기 바보가 된 것처럼 아무런 번호도 생각나지 않았다.
늘 셀폰 주소록을 열고 꾹꾹꾹 눌러서 통화를 시도했으므로.
그러다가 그녀는 옆방으로 다시 갔다.
거기서 책상 전화기를 점검해 보니 보이스메일이 들어와 있다는 신호불이 깜빡거렸다.
숙희는 '뒤로' 찾는 버튼을 눌러서 나타나는 번호들을 들여다 봤다.
"여깄다!"
숙희는 눈에 몹시 익은 숫자들을 보고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그녀는 수화기를 바로 들어서 귀에다 갖다댔다.
전화기는 자동으로, 그 나타난 번호에다 통화를 시도했다. '집이 맞나?'
그러나 아무리 신호음이 가도 받는 이가 없었다.
그녀가 마악 끊으려는 순간, 저쪽에서 굵은 음성이 나왔다. "헬로?"
순간, 숙희는 전화기의 조그마한 스크린을 다시 내려다 봤다.
실수였다.
그녀가 집에서 온 전화번호 같아서 되돌려 걸어본 번호는 얼마 전에 걸려와서 통화했던 아담의 사무실 전화번호였다.
"헬로?"
그녀의 귀에 익은 그의 바리톤 음성이 반갑다는 것 같았다.
숙희는 수화기를 얼른 내려놓았다.
내가 미쳤나 봐! 애담의 사무실 전화번호를 왜 집 전화번호로 착각했지?
아니나 다를까.
그녀가 내려만 놓고 있는 전화기 벨이 울렸다.
방금 걸어본 전화번호가 스크린에 떴다.
'아담!'
숙희는 손을 얼른 떼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 방을 서둘러 나섰다.
남편 있는 여자가 전애인겸 회계사에게도 일 하는 곳 번호를 가르쳐 주었다니.
그녀의 작업 파트너가 다가오며 손에 쥔 것을 흔들어 보였다. "Charger! (충전기!)"
고맙게도 그가 어디서 숙희의 셀폰에 맞는 충전기를 빌려오는지 하여튼 가져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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