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숙희에게서는 어떤 목적이나 이유로 결혼하자고 거의 강제적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지금 이 싯점까지 그녀는 남편이 칼에 맞고 혼수상태에 빠졌던 그 같은 기간 동안 어디 갔다가 온 것과 새로 일 나가는 회사에서 툭 하면 밤샘 작업을 하고. 새 향수를 뿌리고.
그리고 집 앞에서 외간 남자와 포옹까지 한 것에 대한 해명이 없다.
조금만 더 참자! 애들이 자립하거나 아닌 말로 시집을 갈 때까지만 그냥 살자.
흐! 십할! 이런 걸 두고 뭐라고 하지? 정략 결혼은 아니고, 계획적?
어쨌거나 그 때까지만...
운진은 그래도 제법 건진 주문 내역을 창고에 넘기고 회사를 나섰다.
너는 숙희랑 왜 사냐?
난 왕년에 사랑하는 사이였는데, 피치 못할 사정으로 헤어졌다가 이십 몇년 만에 다시 만나 못 다한 사랑을 맺는다고 생각한단다? 흐흐흐! 그러지 마라!
운진은 형록의 가게로 자꾸 가려는 차의 목을 치고 싶다고 부르짖었다.
내가 자꾸 이러면 영아가 힘들어지잖아! 그래도 보고 싶다...
영아의 매끄럽고 풍만한 몸매가 그리운 것은 둘째치고, 영아의 음성이 귀에서 들려오면 그냥 마음이 포근하다.
형부, 사랑해요!
나도!
그는 상상이라도 영아에게는 '사랑' 이라는 말이 술술 나온다.
요즘 같은 심정일수록 영아와 같이 있으면서 다 털어놓고 싶다.
그러면 영아가 그 풍만한 가슴에다 머리를 안아주며 위로해 줄 것 같다.
내가 있잖아요, 형부. 힘을 내세요 하며.
운진은 영아를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온다.
그는 딲을 생각도 않고 그냥 흐르도록 내버려 둔다.
그렇게 영아와 헤어진 것이 아쉬운 것이다.
그냥 둘이 도망쳤어야 했는데...
그랬다면 지금쯤 숨기고 살고 있겠지만 이렇게까지 비참하지는 않을 텐데.
옛말에 이런 비유가 있다. 그 날의 분노를 해가 지도록 가지고 있지 말라고.
다시 말하면 잠자리에 들긴 전에 그 날의 분노를 풀어버리라는.
그리고 이런 말도 있다. 아웃 어브 사이트면 아웃 어브 마인드라는.
즉 보지 않으면 잊혀진다는.
부부라 해도 잠자리를 따로 하기 시작해서 점점 그 기간이 길어지기 시작하면...
어느 한쪽의 마음이 멀어지기 시작하고.
심하면 다른 생각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그래서 기대하지않은 사고가 발생하는 예가 종종 있다.
숙희는 그렇지않아도 차게 느껴지는 남편에게서 점점 더 멀어지는 느낌을 갖는다.
잠싯동안이었지만 이 회사 부사장의 프로포즈에 흔들렸던 마음을 스스로 사죄할 겸 남편에게 친근히 굴면 굴수록 남편은 말투에서 조차 찬바람이 인다.
그래서 숙희는 늘 불안하고 초조하다.
남편이 밖에서 누구를 만났을까?
누굴 만나서 행여 그녀에 대해 잘 아는 사람으로부터 좋지않은 말을 들었을까?
그러니까 남편이 갑자기 왜 자기랑 결혼했느냐는 질문을 던지고, 무슨 목적이냐 그러니까 시늉으로만 결혼 생활을 한다는 둥 화를 냈을래나.
숙희는 사실 챌리도 불안하다.
처음에는 작정상 개리 시니어를 견제하려고 양쪽 자녀의 챈스를 창조해 냈고.
결혼식에 따라온 그 집 아들과 챌리를 본격적으로 접촉시켰는데, 이제는 둘이 뗄래야 뗄 수 없는 아예 결혼을 약속한 연인이 되어버렸다.
그러니 그 집 시니어가 가족들에게 쑤란 여인에 대해 말을 흘리거나 흉을 보거나 하면 챌리의 귀에 당장 들어가고, 그렇게 되면 가뜩이나 외부인처럼 대하는 새엄마를 제쳐놓고 제 아빠랑 얘기를 주고 받을 것이다.
그래서 그 이가 돌변했을까?
챌리를 불러다가 떠봐? 혹시... 내 생각대로 그러는지?
그랬다가 되려 망신 당하는 격이라도 되면 애한테 그 얼마나 창피할까.
숙희는 일로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마음은 더 빠르게 초조해져 갔다.
그러다 그녀는 비로소 아차 내 빤쓰 하고 소스라쳐 놀랬다.
'[소설] 두개의 세상 pt. 02' 카테고리의 다른 글
pt.2 15-10x150 (0) | 2024.09.01 |
---|---|
pt.2 15-9x149 (2) | 2024.09.01 |
pt.2 15-7x147 (2) | 2024.09.01 |
pt.2 15-6x146 (0) | 2024.09.01 |
pt.2 15-5x145 (1) | 2024.09.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