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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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9. 1. 04:09

   운진은 김 여인이 물은 '일은 잘 됐느냐'는 질문을 얼른 이해 못 했다.
   "일이... 라뇨?" 운진은 그렇게 되물으며 고개를 모로 꼬았다.
김 여인이 김치 종지를 미는 척 했다. "전에... 어떤 고소를 당하셨잖아요."
   "고소... 아, 녜에!"
   운진의 얼굴이 대번에 붉어졌다. "기억을 하셨네요? 네, 그랬죠, 참..."
운진은 수저질을 멈췄다.
   "아니, 왜, 더 드시지 않고?"
   김 여인이 쟁반 전체를 미는 시늉을 했다. "오늘 우려낸 국물이라 맛이 시원할 텐데..."
   "그 때... 귀국하신다고 하고는 못... 하셨나 봅니다?"
   "귀국은..."
   "아하! 저를 떨치시려고..."
   "호홋, 차암... 솔직히 물으시니 말문이 막히네요."
   "저도 구태여 변명하지 않은 걸... 오히려 잘 됐다고 여겨지네요."
   "좀... 그랬죠? 그 때는? 제가 실망한 건 사실예요."
   "그 후로 혹시..."
   "혹시... 뭐를...요?"
   "여기서 다른 남자분을 만나시는지."
   "어머... 다른 남자... 아닌데?"
   "아, 녜에..."
   "혹시... 오늘 떠난 애들 아빠를 보고 말씀하시나?"
   "애들 아빠요?"
   "네. 2주일 다니러 왔다가 오늘 새벽 비행기로 갔어요."
   "아..."
   운진은 작은 분노를 느꼈다. "애들 아빠였군요."
   "네?"
   "실은... 파킹장에서 두어번 봤습니다. 실버 칼라 하일랜더(Highlander) 차..."
   "실버 칼라면... 아아! 제 차예요. 애들 아빠가 여기 있는 동안 좀 썼어요."
운진은 수저를 잡을 뻔하는 충동을 가까스로 참았다. 그리고 괜히 혼자 무안해졌다.
   '남편이라고는 보기 어려울 정도로 막 가는 작자네. 그러다 마누라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구.' 
운진은 목격한 내용을 언급하면 그녀가 무척 창피해 할 것으로 미루어 그만 말하는 게 좋겠다는 움직임을 보였다. "퇴근... 하셨어야 하는 건데 저 땜에."
운진은 거의 건드리지않은 음식을 물리려고 쟁반에 손을 댔다. "저, 가봐야 해요."
   "아니, 이 아까운 걸. 왜 안 드세요? 맛이 없나?"
그녀가 서슴없이 수저를 집어 국물을 맛보았다. "아직 제 맛인데? 간도 잘 맞고?"
운진이 여태껏 사용한 그 수저를 김 여인이 서슴치않고 입으로 가져간 것이다. 
운진보다 그 여인이 쟁반을 들고 일어섰다.
   "새 국물로 하나 싸드릴께요. 집에 가셔서 데워 드세요." 
그녀가 미처 말릴 틈도 없이 횅하니 가버렸다.
그런데 운진은 다른 통로로 해서 그 곳을 나와버렸다. 
그녀와 더 이상 대화를 나눈다는 자체가 아내 가진 남자로서 적합한 자세가 아니라는 생각에서. 
그 때 김 여사와 일방적으로 헤어진 이후 운진은 숙희와 결혼했고, 잘 잊고 지냈다. 
그랬던 것을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다시 만났다 해서 말문을 또 트고 아내가 있는 것을 숨길지 아니면 언제 밝힐지 머리를 써가며 긴장감을 맛 볼... 
그럴 상대는 아니다. 왜.
남편이 며칠 같이 있다가, 같이 한 이불 속에서 밀린 섹스와 아쉬울 섹스를 부지런히 처리하고 났을 그런 남의 부인과 어찌 해 본다는 것이 아내 숙희에게 모욕적일 것 같아서. 아니.
설령 숙희와 생각처럼 헤어지게 된다 해도 이 여인은 아니다.
언제 남편이 또 나타나서 그럴지 모를 불안감에 무슨 사귐을...
   그래서 김 여인이 새 국물을 테크아웃 그릇에 잘 담아서 밖에까지 나온 것은 운진이 떠난 후였다. 
정애는 못내 불쾌하다는 심정을 떨구지 못했다.
   내가 귀국한다 하고는 여기서 마주치니까 화났나?
정애는 잘 여민 그릇을 테이블에 놓았다. 비행기표가 장난 아니라서 못 간 걸 갖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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