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날, 운진은 그 한인종합상가 앞 길을 지나가며 건물을 쳐다보기만 했다.
푸드 코트에 가면 아마 그 김 여인이 운진을 나무랄 것이다. 왜 그냥 가버렸느냐고.
그는 자신의 행동이 무례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변명의 이유는 가지고 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기혼남이 다른 남자의 아내와 마주 앉아서 쌍방의 배우자 참석없이 개인적 대화를 한다는 자체가 잘못된 것 같아서' 라고...
며칠 째 그는 그렇게 그 상가 앞을 지나치기만 했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연연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어차피 세상일이 마음 먹은대로 다 순조로히 돌아가지는 않으니까.
숙희가 아무런 연락도 없이 자정이 넘도록 귀가하지않고 있다.
그녀가 남편 운진에게 일러준 사무실 전화번호는 보이스메일을 남기라는 음성 녹음만 흘러나왔다.
운진은 그녀의 셀폰에 통화를 시도하고는 그만 자러 올라가자고 집 안의 불들을 껐다.
그랬다가 행여 나중에 들어올 사람을 생각해서 현관의 불은 켜 놓자고 벽 스위치를 향해 가다가 반투명 유리를 통해 밖에서 들어오는 어떤 불빛을 보았다.
그래서 그는 현관문의 피핑홀로 밖을 보았다. 자동차 두 대가 엇비슷히 세워져 있는 불빛과 그리고 그 불빛을 배경으로 두 물체가 거의 달라붙듯이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자동차의 불빛 모양이 아래 반달꼴인 벤즈 차의 것임에 틀림없다.
운진은 그 작은 구멍에 눈을 더 가까이 갖다댔다.
동공이 좀 더 커졌나, 어두웠던 바깥 광경이 차차 윤곽을 드러냈다.
두 물체는 사람이고 서로 포옹하고 있는 자세였다.
운진은 갑자기 목이 아프면서 말라왔다.
그는 그 구멍에서 황급히 물러섰다. 그리고 그는 달아나듯이 이층으로 올라갔다.
이층 침실에서 창가로 간다면 현관 앞 드라이브웨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그러나 운진은 침대 위에 올라가서는 일부러 창을 향해 등을 돌리고 누웠다.
자동차가 출발해서 멀어지는 소음이 들려왔다.
연이어 현관문이 열렸고, 숙희가 늘 그러듯이 열쇠꾸러미를 신장 위에 던져놓는 소리가 들렸고 그리고 지하실로 내려가는 문이 삐꺽 소리를 냈다.
운진은 일부러 눈을 더 힘주어 감고 잠을 청했다.
그러면서 그는 속으로 제발 헤어질 구실거리가 벌어지기를 바랬다.
그 그림자가 남자여서 아내 숙희가 바람을 피우기를...
그래서 이혼하기를... 제발!
그가 잠이 오는 것을 알도록 숙희는 침실로 오지않았다.
운진이 알람 소리에 눈을 떴을 때는 침대에 혼자였다.
그는 방 안을 얼른 돌아보고 창 가로 갔다.
그녀의 벤즈 차가 집 앞에 안 보였다. 딸들의 차들도 이미 없는 상태이다.
그의 벤즈 차가 얇은 서리를 입은 채 집 가까이 세워져있고, 그가 구역에 나갈 때 쓰는 미쭈비시 차가 어제 세워놓은 그대로 잔디밭에 대각선으로 있다.
그는 무슨 뜻에선지 고개를 끄떡이다가 창 가에서 후닥닥 물러섰다.
숙희의 벤즈 차가 들어오고 있는 것이었다.
운진은 그리고 알았다.
숙희가 차를 마악 세우는 자리는 드라이브웨이 포장 자체가 서리에 덮혔고 바퀴가 새롭게 자국을 내고 있다는 것을...
그렇다면, 저 차는 밤새 세워졌다가 아침에 움직인 것이 아니다.
밤새 없었어서 빈 자리에 서리가 내렸고, 이제 아침에 그 차가 돌아오는 것이다.
운진은 그가 되려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다가 현관문 열리는 소리와 동시에 욕실로 뛰어들어갔다. 그리고 그는 황급히 옷을 벗고 샤워스톨로 들어갔다.
운진이 샤워를 유난히 길게 하고 나와서 보니 숙희가 안 보이는 것이다.
집 안으로 안 들어왔나...
그는 창 가로 가서 집 앞 드라이브웨이를 내다봤다.
그녀의 벤즈 차가 또 없어졌다.
'뭐 하자는 거야... 희한하네?'
운진은 그 날따라 정장을 피하고 싶었다. '혹시 모르니까 파카를 입자.'
그 전에 그는 혹 아내란 여인이 무슨 설명 따위를 남겼을까 하는 기대감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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