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혹시나 하고 화장대와 침대 머리맡 그리고 아랫층에 내려가서 리빙룸과 부엌까지 샅샅이 뒤졌다.
행여 숙희가 메모를 남겨놓았을까 해서.
그러나 아무런 흔적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그는 아랫층에서 아주 우연히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올려다봤다.
계단을 올라가자마자 오른쪽에 나타나는 문이 메인 욕실인데 좀 전에 내려올 때는 보지 못했던 어떤 옷가지가 핸드싱크대 위에 아무렇게나 걸쳐져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운진은 그리로 올라가서 누구의 어떤 옷인가 보았다.
여자의 그러니까 숙희의 속내의 벗어 놓은 것이었다.
'뭐가 그리 급해서 안방도 아니고 여기서 속옷만 갈아입고 나가나...'
운진은 그녀의 속옷이 행여 딸들의 눈에 띄일까 봐 치우려고 집었다. 그리고 무언가가 만져졌다.
운진은 일부러 보려한 것이 아니라 저절로 눈이 그리로 갔다.
뭐가 묻었는데 약간 뻣뻣하고 약간 누런 색의 흔적이 만져졌다.
'이건... 정액이 마른 감촉인데?'
그러한 흔적이 만져지는 팬티의 부위가 바로 사타구니와 닿는 곳.
운진 그가 아내 숙희와 지하실에서 즉흥적인 섹스를 가진 것이 벌써 일주일도 넘었는데...
그 때 그 사정한 것이 흘러나와서 그녀의 팬티에 묻었다고 가정하면 숙희는 같은 팬티를 일주일도 넘게 안 갈아 입었다는 말? 아니.
그녀는 하루에도 어떨 땐 두번씩 갈아 입을 때도 있다.
운진은 각 가게들의 전화 번호가 적힌 리스트를 챙겨 들고 그리고 벤즈 차에 올랐다.
운진은 필드로 나가지 않고 회사 사무실로 갔다.
그리고 빈 방 하나를 차지하고 들어 앉아서 전화기 한대를 전세냈다.
그러나 거는 곳마다 다음 주에나 보자는 응답이었다.
운진은 그 날의 리스트에 든 가게들을 하나도 빼놓지않고 모두 연락했다.
대충 만여불 어치의 주문을 창고부서에 넘기고, 운진은 점심 때쯤 사무실을 나섰다.
그리고 그는 그 한인 종합 상가의 푸드 코트로 갔다.
한편 숙희는 묘한 입장에 놓여져 있어서 이틀째 고심하는 중이었다.
몹시 늦던 날, 그녀는 남편이 여러 차례 전화를 해왔는데 받지 않았다.
그 때는 이상하게 괜히 짜증이 나서 받고 싶지 않아서였다.
남편의 세번째였고 마지막의 전화는 집 앞에서였다.
제레미가 집 앞에까지 따라와서 부탁을 들어주어 고맙다고, 가볍게 포옹을 했는데, 그 때 주머니에서 진동한 것이 그 시각에 남편 외에는...
그 자리에서 회사로 야근을 갔고, 아침에 집에 들러서 속옷만 갈아입고 또 곧바로 나왔는데.
숙희는 깜빡 잊었다는 듯이 남편의 셀폰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운진은 세번 정도의 벨톤 후에 응답했다. "녜."
"자기?"
숙희는 혹 전화를 잘못 걸었나 해서 주저했다. "자기?"
"응."
"오오. 목소리가 이상하길래 난 잘못 걸었나 하고. 어디야?"
"글쎄... 뭐 먹는 덴데, 어디라고 꼭 말해야 하나."
"자기... 무슨 대답이 그래?"
"흥. 글쎄?"
남편의 그런 말투에 숙희는 쭈뼛거리는 동작으로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운진은 아내와 짧막한 통화를 나눌 때, 김정애가 일하는 곳을 피해서 다른 간이 음식점 메뉴를 보고 있었다.
그 분식집은 메뉴 읽기가 조금 힘들었다. 짬볶밥이란 단어를 여기 와서 처음 본다.
그림은 무얼 뜻하는지 한눈에 알 수 있게 해놓았는데, 이름이 굉장히 생소한 것이다.
그 간이음식점 안에서 호리호리하고 세련되게 생긴 여인이 부지런히 움직이다가 운진을 발견하고는 이내 나왔다.
"뭐 드려요?"
"짬, 뽁..."
"짬볶밥이요. 여기서 드실 거예요?"
"녜."
운진은 바지주머니에서 돈부터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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