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진이 아내와의 전화 통화를 퉁명스럽게 받아친 것은 불쾌한 감정들을 해소하지 못해서이다.
숙희가 끝끝내 밝히지않고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것이면 그는 '나도 생각이 있다' 라는 반발로 발전하는 것이다. 그런 판국에 경찰이 집 주위를 배회한다는 말을 전해봤자 운진의 귀에 들어올리 만무였던 것이다.
사실 몇몇 가게의 말을 종합하면, 덩치가 좋은 편의 흑인 남자가 신분도 밝히지않고, 이제는 세일즈맨의 방문하는 스케쥴을 아예 대놓고 묻는다는 것.
그 자가 타고 다니는 차가 베이지색의 토요다 승용차라는 것도 밝혀졌다. 그래서 운진은 아내에게 집 앞에까지 들어왔다는 차가 무슨 차였느냐고 묻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그만 두었다.
운진은 그 흑인 사내가 아무래도 형사 같다는 결론으로 기울었다.
형사가 남의 뒤를 밟는 거는 무슨 범죄 조사 때문 아냐?
먼젓번의 칼침 사건이 아직 미결이라 두번째의 피습을 막아보자는 선심에서?
아니면, 미스터 오 바람끼가 다분해서 부인이 사설 탐정을 사서 붙였든지.
그 마지막 말은 운진이 의도적으로 어떤 가게에서 죽치는 것을 흉보는 말이다. 즉 혼자 술가게를 운영하는 키 작은 아낙네의 가게에서.
그러나 운진은 만만해 보인다고 그런 여자와 함부로 몸 섞고 하는 장난은 하지않는다.
현재 아내에게 의심이 잔뜩 가고 있는 판에 섣불리 그런 장난을 했다가 그녀가 알아지게 되면 되려 몰리고 말테니.
전에 잠깐 음흉한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었지만, 이제 그는 그런 생각을 접었다. 그가 그 가게에서 많이 죽치는 이유 중에 하나는 그녀가 전화를 맘대로 쓰게 허락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다른 한가지는 영아가 그 흰 밴을 몰고 가게 앞길을 네시에서 다섯시 사이에 꼭 지나가기 때문이다. 폴을 어디서 태워오는 것일테지만.
그는 그렇게나마 잠깐 스치는 순간이지만 영아를 보고 싶어한다.
어떤 놈들인지 한번 실패로 물러서는 건가?
운진은 구역을 돌면서도 주위를 경계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범인은 현장에 반드시 나타난다고 하던데.
영아 가게에 다녀갔을까?
'영호새끼는 내 짐작대로 얼떨결에 연극을 한다고 차를 타고 달아난 게 다야... 그 챌리 친부라는 새끼를 일단 봐주면, 시킨 놈들이 실패한 걔네들을 반드시 손 볼테지. 그 때 누구였는지 노출되려나? 그 두 새끼는 입을 열었다가는 뒈질테니까 죽어도 입을 다물테고.'
운진의 미쭈비시 차가 오늘은 영아의 가게 앞을 아주 천천히 지나쳤다.
그 때 마침 학원 같은 곳에서 돌아왔는지 영아가 방금 그 하얀 밴에서 내려서는 차 반대편 옆문으로 돌아가는 것이 보였다.
잠시 후 영아의 손에 이끌려서 폴로 보이는 사내애가 팔짝팔짝 뛰며 가는 것이 보였다.
영아가 무심코인지 이쪽을 돌아다보는 것이었다.
운진은 그 때 차를 갑자기 빨리 움직이면 되려 발각될까봐 얼굴만 얼른 돌렸다. 그리고 곁눈으로 보니 영아는 아이와 함께 이미 가게 안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운진은 저도 이유 모르는 한숨을 토해냈다.
늘 익숙한 장면이고, 그는 옆구리로 들어오던 칼끝의 촉감을 지금도 기억한다.
뒤에서 어서 움직이라고 차 경적이 빵 하고 울었다.
그 바람에 운진은 사방 거울을 보면서 차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가 만일 숙희와 당장 이혼한다면... 당장 갈 데가 있나?
그래도 그냥... 이쯤에서 헤어지는 게 안 나아?
숙희가 근 몇주 간의 마라톤식 작업을 마친 뒤라 이틀을 내리 잠만 자고 나니 그녀의 남편 운진이란 이는 그 이틀간을 아예 따로 자는 것이었다.
'저 이가 정말 왜 저러지? 안 되겠다!'
숙희는 목욕을 정성들여 했다. '멋진 섹스 하자고 해야지!'
그녀는 브런치에 맞춰서 늦은 커피와 프렌치 토스트와 계란 부침만으로 떼웠다.
그녀는 잠옷 위에 롱 로브를 걸친 모습으로 리빙룸에서 열두시 낮 뉴스를 틀었다.
케이블 TV의 리못 콘추롤로 뉴스 프로를 찾으니 앵커가 전하는 내용은 어떤 사건의 중간을 말하고 있는데, 화면 밑으로 지나가는 자막 중에 숙희가 며칠 전까지 밤샘 마라톤 작업으로 감원 계획을 만들어 준 회사의 이름이 지나갔다.
'13% cut to save 150 million'
백오십 밀리언불을 절약하기 위해 13 퍼센트를 감원하다.
쑤는 미소를 지었다.
쓰리 헌드레드 밀리언이 아니고? 제레미 실수하네?
작업해 준 그 회사는 제레미의 순간적인 꾀대로 시행하려면 눈에 안 보이는 이중적자를 당하는데.
그런다고 헌드레드 핖티 밀리언 달라 만큼 더 받아낼 줄 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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