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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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9. 3. 04:54

   숙희의 철학에 '매달린다' 라는 단어가 참 생소하다. 
그러니까 남에게 '간청한다' 라는 뜻도 되나 본데, 여태껏 살아온 숙희는 남들이 그녀에게 매달리고 간청했으면 모를까 그녀가 남에게 그래 본 적이 전혀 없어서 낯선데 이제는 혼자 대하기에 벅찬 현실을 남편에게 부탁 내지는 협조를 구해보고 싶어도 선뜻 내키지가 않는다.
   '아직은 내가 이 이를 백 프로 모르니까.'
숙희는 저도 모르게 남편의 팔 힘을 가늠해 보고 있었다. '운동 같은 것도 안 해봤다 그러고... 그 전에 내가 때리면 피할 생각도 없이 맞기만 하고... 툭 하면 삐치는 남자를.'
그런데 그가 전에 사람을 돌로 때려서 하마터면 살인 미수로 들어갈 뻔 했었던 사건을 어찌 설명할까... 
   김 선생 말처럼 이 이에게 어떤 잠재력이나 저력이 정말 숨어 있을까?
숙희는 천천히 걷는 도중 운진의 옆 얼굴을 자꾸 봤다. 정말?
숙희의 머리가 차차 기울어지더니, 남편의 어깨에 닿았다. "나 자기한테 섭섭한 거 많어."
   "그러면 안 되지."
   "그래서 나 슬퍼."
   "어허이..."
   "우린 부부잖아. 그치."
   "아직까지는 그렇지?"
   아직까지는 그렇지? 무슨 말이야?
그녀는 그의 그 말을 속으로 되풀이했다. "자기는 남자라 말을 되도록이면 안 하고 넘어가려나 본데, 여자는 안 그렇거든."
   "서로 스케쥴이 다르다 보니 말 할 틈이 없었나 부지."
챌리와 킴벌리가 나란히 가다가 앞서 가기 시작했다.
킴벌리가 언니의 팔을 잡고 밀듯이 가면서 뒤를 봤다.
숙희가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래두우, 어쩌다 마주치면, 남편이 수고한다고 한번씩이라도 안아주고 하면 여자는 힘이 나고 그럴 텐데... 자기는 아주 누가 서울 사람 아니랠까 봐 티를 내는지 싹싹 돌아서구."
   "..." 
운진은 속으로 웃었다. 그렇게 끌어가지는구나. 서을 사람인 것을 핑게로.
   "말두 정 떨어지게 하구."
   "댁네 말도 만만치 않습디다."
   "우리 충청도 말이 얼마나 정다운데!"
   "충청도 말이... 정답진... 않지..."
숙희는 남편에게 기대었던 머리를 바로 했다. "어?"
   "내 귀엔 충청도 말이 굉장히 무뚝뚝하던데."
   "그런 말은 또 처음 듣거든?"
   숙희는 남편에게 다시 머리를 기대었다. "나보고 일하지 말라고 했는데, 내가 일 나가니까 화가 났나 했지만. 자기 정말 나한테 너무 하더라."
   "..."
   "내가 일 나가서 얼마나 울었는 줄 알어?"
   "거... 숙희씨가 울었다고 하면 아무도 안 믿는데, 자꾸 그러시네?"
   "나... 눈물 많은 여자야. 몰랐어?"
   "글쎄요오..."
숙희가 보조를 맞춰 걸으며 그 발 박자만큼 남편의 어깨에다 머리를 찧었다. "내가 그렇다고 하면 제발 좀 믿어라!"
운진은 그 순간 저도 모르게 한가지 묻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나를 찌른 자에 대해서 그녀가 알고 있는지.
아니면, 시킨 자를 당신, 잘 아나? 
그 말이 운진의 입술에 올라왔다. 
그랬다가 운진은 원치않는 사태가 벌어질까 봐 그만두었다. 
두려워서는 아니었다. 
아직은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아서였다.
앞서서 가는 챌리가 코트 주머니에서 셀폰을 꺼내 귀에 대는 것이 보였다.  
챌리가 셀폰 통화가 길어지는지, 보드워크 중간에 설치된 벤치들 중 하나에 가서 앉고, 킴벌리도 나란히 앉아서는 셀폰 통화를 따로 시작하는 것이었다. 
   "보이 프렌드들이 어디 있나 찾나 봐, 자기." 숙희가 아주 잘 아는 듯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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