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운진은 조카설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설이가 처음에는 말을 안 하려고 했다. 그러다가 결국 삼촌의 강권에 못 이겨 들려준 말...
설이가 회사의 합병으로 일자리를 잃게 되고, 답답하고 궁금도 하고 해서 지나가는 길에 들렀던 삼촌의 술가게는 그의 처제가 보고 있었다고.
영아는 사돈인 설이를 뒷방으로 데려가 형부가 어떤 자의 머리를 돌로 때려 구속되었다고 말해주었다고. 그리고 형부가 변호인 선정을 거부한다고 말해주었다고.
그로부터 며칠 지난 뒤 설이는 숙희가 전근 가기 전에 잠깐 보자고 해서 나갔다고. 그 자리에서 설이는 며칠째 밤새 울어댄 엄마 때문에 잠을 못자 퉁퉁 부은 얼굴로 숙희에게 들켰다고.
“삼춘이, 사람을 때려서 랔덥(갇히는) 됐대요.”
숙희는 그가 그럴 리가 없다고,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분명 무슨 사연이 있다고 펄펄 뛰었다고.
오히려 설이가 삼촌에 대해 숙희로부터 더 자세히 듣게 되었다고.
‘그 사람은 절대 남을 해칠 줄 모르는 사람이지.’
여자인 숙희가 발로 차고 때려도 그는 신경질만 냈지 절대 맞상대를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고. "니가 나한테 그랬잖니. 삼촌은 바퀴벌레도 못 잡는다고. 그런 삼촌이 사람을 때렸다면 틀림없이 이유가 있을 거야!"
그래서 숙희는 안 가르쳐 주려는 설이를 설득해서 가게의 위치를 알아냈다고. 그리고 퇴근길에 그 가게에 들러서 그러니까 영아를 만났다고.
둘 사이에 어색한 인사가 오가고 숙희는 저돌적으로 물어 영아에게서 자초지종을 얻어 들었다고. 그리고 숙희는 회사와 전문으로 계약한 변호사 단체에 의뢰해서 폭행 치상에 유능한 변호사를 찾았다고.
그녀는 제프의 허락 하에 그 변호사를 회사 이름으로 고용할 수 있었다고.
그래서 그 변호사가 영문을 몰라 하는 운진의 변호를 맡아 간단하게 처리해 주게 되었던 것이다고...
그녀는 이유야 어쨌든 그런 그가 싸워서 그것도 남의 머리를 깨서 붙잡혀 들어갔다면 그건 안 봐도 그의 발악이었을 것이다 라는 생각에 선뜻 거금을 들여 그의 변호를 후원했던 것이다.
숙희는 변호사에게 수고비를 지불하면서 왜 나타내지 않고 뒤에서 지원하느냐는 질문에 그냥 미소로만 대했다. 그래서 나중에 설이가 삼춘의 석방 소식을 전했을 때, “어머, 그러니? 다행이다,” 하고, 반기는 시늉만 했다.
때가 되면 다 만나게 되고 모든 걸 다 알게 되리라고 스스로를 달랬다.
한편 숙희는 두번째 꼬냑잔을 비우며, 술가게로 찾아 갔었던 일을 되뇌였다. 벌써 여러번째 그래 보는 이유는 그녀의 머릿속에서 의문의 부호를 갖게 하는 점들 두어가지...
술가게를 찾아가서 신분을 밝히지 않고 운진에 대해 물었을 때, 배가 남산 만한 그 여인이 던졌던 이상한 분위기의 눈빛.
칼리지 학생 정도로 보이는 여자의 꼼꼼히 살펴보던 눈빛.
또 한 여학생의 눈빛.
결국 전에 그냥 알고 지내던 사이라고 둘러대서 사건의 내용을 알아냈는데...
숙희의 직감에, 그 임신부가 처제라고 했지만, 여자들 특유의 육감에, 그 여인이 풍긴 은근한 공격성 태도가 지금도 수상하게 여겨졌다.
그리고 운진이 부인을 암으로 잃었다는 것을 재확인하게 되었다.
조카 설이에게서 숙희의 존재를 전해 듣고 당장 오션 씨티를 갔었다는 운진이 부인을 잃고, 그 부인에게 몹쓸 짓을 행한 자를 돌로 쳤다는 스토리...
'나이 들어가면서 그 이도 변했나?'
숙희는 세잔째의 술 꼬냑을 이번에는 아주 큰 글래스에다 부었다. '흥, 뭐야. 내가 왜 이래? 오운진이란 남자는 나한테서 아주 옛날에 죽었잖아. 그 이도 밖에다 죽었다 하라 시켰고.'
설이가 그녀의 책상에 놓인 삼촌의 사진을 보고 지었던 난해한 표정은...
‘혹 누가 알어, 또? 서부에 가서는 전혀 색다른 사회를 만날 지? 새로운 사람도 만나고?’
숙희는 적당히 오른 취기를 즐기며 침실로 향했다.
그녀는 사실 설이를 다시 만나고 운진에 대한 언질을 들은 이후 남자를 침실로 들이지 않았다.
그녀는 혼자 산다는 잇점을 이용해서 몇 남자들과 거의 규칙적으로 돌아가며 특유의 타고난 성욕을 처리하는 동안은 운진에 대해 까맣게 잊었었다는 것이 옳다.
그녀는 이날 혼자 술을 하다 보니 남자가 강렬하게 필요해졌다. 특히 그녀가 은행 부회장이었던 시절 리무진 운전자였던 흑인 사내는 물건이 정말로 특대였다. 그것이 질을 터뜨릴 듯이 밀고 들어오던 감촉은...
그러나 그녀는 자신을 상징적으로 때리며 침대에 들었다.
그녀가 운진의 소식을 듣고 변한 이유는 자신도 모른다.
이제 반항의 끝인가?
이제 당신도 나도 반항 그만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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