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2

pt.2 3-1x021 스무해 묵은 분노

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8. 20. 03:56

스무해 묵은 분노

   아이들이 식탁에서 도망쳤다.
   “저주해! 이 쌍놈의 늙은이야! 이젠 사위를 저주까지 해? 당신이 사람이야? 어떻게 저주할래! 나도 온 동네 아랫도리 내놓고 다닐까? 그 마누라에 그 남편새끼?”
   “뭐, 뭐, 이런 게 다 있나? 아주 미친 놈이네?”
   “미친 놈? 내 한번 미쳐볼까? 나 미치는거 한번 보여줘?”
운진이 두르고 있던 가운을 벗어던졌다. 그리고는 안에 내읫바람으로 식탁을 들어엎었다. 
그릇들이 사방으로 날아가고 국물이 튀고 밥들이 카펫 위에 엎어졌다. 
일부 그릇들은 부엌까지 날아가서 깨지기도 했다.
   “밥상 다시 차려! 먹을 수 있게 똑바로 차려!”
   운진이 가운을 집어들고 이층으로 향했다. "나 같으면 사위한테 황송해서라도 잘 차리겠다."
장모란 이가 너무도 어이없는 봉변을 당하니 입이 굳어버렸다. “아니, 뭐, 저, 저, 저런 놈이 있나! 저게 실성한 놈이지, 성한 놈이야?” 
노인네가 온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결국 노인네는 아들 영호를 불렀다.

   영호는 첫발 들여놓을 때는 눈치를 보는 것 같더니 벌어진 광경을 보고는 열이 뻗쳤다.
보아 하니 저녁상이 날아간 광경이다. "아니, 진짜... 아래 위로 모르나!"
윗층에서 평상복으로 갈아 입은 운진이 영호의 음성을 들었다.
   "너 이 새끼! 잘 걸렸다!"
   운진은 계단을 한달음에 달려 내려왔다. "요 쥐새끼 같은 놈!"
영호가 제 어미의 뒤로 갔다.
   "지금 누구한테 욕이야!"
   장모란 이가 두 팔을 내휘저으며 사위를 치려 했다. "그리고 어쩔라구! 어쩔라구!"
   "비켜! 늙은이! 아들 새끼하고 볼 일 있으니까."
   운진은 장모건 뭐건 팔을 잡아챘다. "천하에 비굴한 새끼!"
운진이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변해서 영호를 잡으려고 이리저리 몰았다.
영호는 소파 뒤로 화분 뒤로 피하면서 새삼스레 형록의 말을 기억했다.
   조심해라. 이런 사람이 눈 하나 깜짝 않고 사람 죽인다...
영호가 얼른얼른 보는 전매형의 눈은 인간의 눈이 아니었다. '헛, 씨발! 진짜네!'
영호는 전에 어이없게 운진에게 두어차례 맞아본 경험이 있는데, 세게 때리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어찌 아는지 아픈 급소만 골라서 쳤다. 게다가 지금 보니 완전 또라이가 되어서 날뛰는데 잘못 걸렸다가는...
전에 가게에서 아미 나이프를 목에다 대고 낮은 음성으로 말한 적이 있는 누이의 전남편이다. '너 같은 놈 프리저에 처넣으면 몇십년도 몰라!'
그리고 쌈께나 하고 다녔다던 조가도 목이 잡혀 숨도 못 쉬고 똥을 다 지렸다.
운진은 리빙룸 복판에서 멈춰섰다. "비겁한 자식! 부랄 떼, 임마!"
   "아니. 이놈이, 지금 누구한테 부, 부랄, 천하에 막되먹은 놈 같으니!"
   영란모가 차마 반복 못 하고 치를 떨었다. "얘도 마흔 꺾었어, 이놈아!"
   "마흔 넘은 놈이 열살짜리만도 못 하게 비겁을 떨어? 조가 새끼하고 한통속이 되어 까분 놈아! 예가 어디라고 들어와!"
   운진이 좋게 말할 때 오라는 식으로 손짓했다. "콩밥 먹이기 전에 순순히 와서 무릎 꿇어라. 오늘 내 손에 잡히면 너, 뼈도 못 추린다."
영란모는 이상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들이 덩치로도 사위에게 안 빠지는데 꼼짝을 못 한다.
영호가 기회를 타서 나가는 쪽으로 잽쌔게 튀었다.
   "엄마! 빨리 와! 나 안 기다려!"
   그는 집 현관문을 힘껏 열어젖혔다. "빨랑 와, 엄마!"
영란모는 어쩔 줄 몰라 아들과 사위를 번갈아 보기만 했다.
   "엄마, 뭐 해! 빨랑 오라니까?"
   "아들 도망가기 전에 얼른 따라가서 차 타슈!" 
   운진이 문쪽을 가리켰다. "어쨌거나 와 줘서 고맙시다."
영란모는 영문도 모른 채 아들 뒤를 따라 허둥지둥 떠났다.

'[소설] 두개의 세상 pt. 02' 카테고리의 다른 글

pt.2 3-3x023  (0) 2024.08.20
pt.2 3-2x022  (0) 2024.08.20
pt.2 2-10x020  (0) 2024.08.19
pt.2 2-9x019  (0) 2024.08.19
pt.2 2-8x018  (0) 2024.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