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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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8. 20. 03:57

   운진은 바닥에 난장판인 그릇들과 음식들을 말끔히 치웠다. 
그리고 나니 열한시가 넘었다. 
아이들이 쫄쫄이 굶었다는 미안한 마음에 운진은 늦게라도 문을 열은 가게가 있을까 생각하며 이층으로 올라갔다. 
큰애의 방부터 두드리니 챌리가 얼른 문을 열었다. 
챌리의 얼굴은 의외로 평온했다. 
   “아빠가 미안하다. 추태를 부려서.”
챌리가 말뜻을 얼른 못 알아듣는 눈치였다.
   “키미는? 걔 화났니?”
챌리가 대답 대신 옆방의 문을 두드렸다. “키미?”
   “What!” 킴벌리의 거친 외침이 터져나왔다.
챌리가 문을 또 두드렸다. “아빠야.”
   “What do you want! (뭘 원하는데?)” 
운진은 챌리보고 됐다는 시늉을 해보이고 작은애의 방문 앞에 가 섰다. 
   “헤이, 키미. 라면 먹을래? 아빠가 끓일께.”
방 안에서 아무 기척이 없다가 방문이 열렸다. 
킴벌리가 잠옷바람으로 얼굴만 빠꼼 내밀었다.
   "우리 라면 먹을까?" 
   “I thought I heard a car came? Did she leave? (차 하나가 온 소리가 난 것 같던데? 그녀는 갔어?)” 킴벌리가 아랫층을 살피는 시늉을 했다.
   “I’m sorry, Kimmie. I was so mad, you know? (미안하다, 키미야. 내가 몹시 화났었어, 알겠지만?)”
   “I understand. (이해해.)” 킴벌리가 눈을 내리 깔았다.
아빠 운진은 정말로 딸 둘 앞에서 면목이 안 섰다.
   “That was terrible food. It shouldn’t be that way. I mean, she could do better than that. (그건 너무 엉망이었어. 그런 식으로는 안 되었지. 내 말은, 그녀는 그 보다 더 잘 했어야  했어.)”
   “I know. (알어.)” 킴벌리가 아빠를 흘낏 보고는 다시 눈을 내리 깔았다.
운진은 킴벌리가 의외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나오자 되려 불안했다. 
그래서 더 할 말을 못 찾고 우물쭈물하는데, 챌리가 말했다. 
   “아빠가 라면 끓이실 거예요?”
킴벌리가 아빠를 쳐다봤다. “Yeah! Didn’t you say you’re gonna make some ramen? (정말! 아빠가 라면 만든다고 말 안 했어?)”
운진은 얼른 대답했다. “I’ll do it right away! (내 당장 하지!)”
챌리가 부엌으로 따라 내려왔다.
아빠가 개스레인지에 냄빗물을 얹어놓고 캐비넷을 뒤지니, 챌리가 다른 곳에서 라면을 찾아왔다. 
   “아빠. 우리가 숨겨놨어요.” 챌리가 말하고는 배시시 미소지었다.
킴벌리가 잠옷에 가운을 걸치고 내려왔다. “Oh, you got it? I was gonna tell you where they are. (오, 찾았어? 난 내가 그것들이 어디 있는지 말해주려 했지.)”
챌리와 킴벌리가 좀 전에 난장판이 벌어졌었던 바닥을 내려다 봤다.
카펫에 김칫물이 묻은 것 말고는 식탁도 바로 세워져 있고 그릇들이 다 사라졌다.
   그 날 세 부녀는 라면을 먹으며 두시까지 떠들었다. 
결국 쉬는 날 즉 일요일날 놀러가기로 합의하고 각자의 방으로 들었다.
운진은 아이들이 다행히도 화가 풀린 눈치라 조금 안심을 했다.

   이튿날 아이들이 늦잠을 자서 지각했다.
운진은 우정 학교 교무실에 들어가서 킴벌리를 일찍 못 깨워줘서 지각했다고, 직접 쓴 메모를 냈다. 
그가 학교사람들에게서 받은 인상은... 
키미에게 아빠가 있었나 하는 의아심이었다. 
키미는 건성으로 바이 대디 하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뛰어갔다.
   엄니를 와 계시게 할까?
그는 학교 건물을 나서며 셀폰을 꺼내들었다.
   엄니는 좀 나으실래나... 아니면, 누님을?
그는 모친과 친누이 둘 중에서 누가 나을까 비교해 봤다.
모친은 그저 사납고 누이는 정신요양을 받고 돌아온지 얼마 안 되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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