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2

pt.2 5-1x041 이제는 서로에서 풀려날 때

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8. 22. 04:31

이제는 서로에서 풀려날 때

   캘리포니아로 돌아간 숙희는 줄곧 메릴랜드의 남자 즉 방탕한 생활의 사내를 생각하며 지냈다.
숙희는 한동안 우울증 비슷한 증세에 입맛도 없고 괜히 피로해서 며칠 병가를 냈다. 
그리고 주말을 맞았는데, 설이가 일찍 퇴근해서는 숙희가 누워있는 방을 노크했다.
   “들어와, 설이야.” 
숙희는 침대에서 윗 몸만 일으켰다.  
설이가 방문을 조금씩 열고 들어섰다. “아줌마, 이거요.”
숙희는 설이가 손에서 내미는 누런 종이봉지를 보고 일어나 앉았다. “그게 뭐니?”
설이가 숙희의 침대 발치께로 왔다. “아줌마 좋아하시는 식당 수프!”
   “얘는, 그런 걸 뭐 하러 사 오니.”
   “아줌마 입맛 없으시면 카페테리아에서 이 수프만 잡수셨잖아요.” 
숙희는 아이의 정성이 고마와 스푼을 받았다.
   “제가요, 쉐프 스캇한테 특별히 부탁했어요. 아줌마가 아프시다니까, 특별히 따로 떠서 뭐를 더 넣고 다시 만들었어요.”
   “그랬니? 고맙다.” 
   숙희는 첫수푼질을 해서 수프를 맛보았다. 
   약간 걸죽한 해산물 수프에 매운 것을 가미한 맛이 났다. “맛있구나?”
   “그쵸?” 설이가 미소를 지었다. 
숙희는 수프를 조금씩 떠 넣으며 평소 특별한 관심을 보내오는 주방장 스캇을 머릿 속에 떠올려봤다. 
뚱뚱하고 항상 미소를 짓는 이태리 계통의 남자인데 들은 바에는 한차례 이혼을 한 경력이 있다고 했다. 애들은 여자에게 가 있는데 버는 족족 다 갖다 바치고도 애들을 못 만나게 해서 늘 속상해 한다는 말도 들었다. 
   ‘그래도 그런 남자와는 아니지...’ 
숙희는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운진씨를 다시 보려면 주변을 정리해야 한다고 결심하고선. 
그녀는 요즘 들어 갑자기 자신이 참 비참한 처지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꼭 혼자 살아서 한다는 이유가 있다든지. 예를 들어 몹쓸 병이 있다든지 아니면 무슨 독신에 대한 흠모심에 젖어 그런 것은 절대 아닌데 어느 덧 오십이다. 솔직히 말하라면 곧 오십을 넘는다.
그 이도 오십을 넘었겠네. 나 보다 두살 위니까... 
숙희는 그러다 아직 안 가고 섰는 설이를 봤다.
   "응, 설이야."
   그녀는 설이가 수프를 사다 바친 이유를 알아차렸다. “차 필요하니?”
설이가 숙희를 유심히 보고 있다가 그 질문에 헤헤 거렸다. 
   “차는 저를 데릴러 오니까 필요없구요. 아줌마가 아프신데 제가 나가기가, 헤헤.”
   “나 다 낳았으니까, 내 걱정 말고 가 봐. 지금 나가야 돼?”
   “여섯시쯤에 핔엎 올 거예요. 올 때 아줌마 좋아하시는 커피 아이스크림 사 오랬어요.”
   “내가 병자니? 그런 건 뭐 하러 시키니, 쓸데없이.”
   “아줌마가 얼른 일어나셔야 제 맘이 편하거든요.”
   “그래. 나 다 나았다. 이것 먹고 일어날께. 일찍 들어 와!”
   “네, 아줌마!” 
설이가 좋아서 방을 나갔다.
숙희는 수프를 몇숟갈 더 뜨다가 곁으로 물리고 도로 누웠다. 
천장을 대하고 누우니 거리가 점점 까마득해지는 느낌에 그녀는 눈을 똑바로 떴다. 
그제서야 천장이 바로 보였다. 
부친상 때 만난 김선생의 말이 떠올랐다. 
   ‘내가 솔직허니 말한다 하면 미쓰 한 한티는 여자다운 맛이 요만치도 없지라. 미스타 오가 그래도 남잔디 괄괄한 미쓰 한 한티 죽어 지내겠능가. 안 그러요? 차라리 미스타 오가 여자같이 얌전허다면 모를까, 그 냥반도 한번 핏대나면 대단하더라고요. 내 우연찮이 거시기 이야그를 들었는디, 처남인가가 엉겼다가 코가 나가고 피를 엄청 쏟게 맞았답디다. 그러니 만약으 이작도 미스타 오한테 마음이 있으시다면 한코 꺾고 수그러지시요. 앗따, 사랑하는 남잔디 미스 한 자존심 좀 꺾은 들 무신 손해날끼 있다고 그래싸요, 잉!’   
숙희는 두팔을 베개 삼아 누워 천장에다가 지난 날을 자꾸 그려봤다. 
그가 상처를 해서 무슨 기회를 삼는다든지 그래서 갑자기 그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이제는 같은 언어를 쓰는 말동무가 필요하고 그는 어떨까 재고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이제 약도 끊고 이 남자 저 남자 다 끊는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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