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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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8. 21. 03:49

   운진은 다 씻고도 제 방에 있다가 저녁이 준비되었다는 전갈이 설이를 통해 올 때서야 움직였다. 
그래도 집안의 남자인데 손님에게 말도 건네고 해야 하는 줄 알지만 상대가 숙희인 지라 방에서 꼼짝 안 한 것이다. 그의 머릿속으로 오만가지 상상이 떠올랐다.
   모두 저녁상 주위에 둘러앉았다. 
설이가 눈에 띄게 숙희에게 친절을 베풀었다. 
킴벌리가 숙희를 몰래몰래 훔쳐봤다. 
챌리는 시종 눈을 내리 깔았다. 
그러나 손님을 내대는 분위기가 좀 전보다는 덜 한 것처럼 느껴졌다. 
상에는 김치두부찌게도 있고 장조림도 있고 콩나물무침 시금치무침 등등 온통 한국식 일색이었다. 
운서가 숙희 앞으로 나물들을 밀어주는 시늉을 했다. “찬이 입에 맞을래나?”
숙희가 환하게 웃었다. “전 한국 음식 먹어보는 게 소원이예요, 언니.”
챌리와 킴벌리가 '언니' 라는 단어에 숙희와 운서를 번갈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 혼자 살면 해 먹기 쉽지 않지.”
   “제가 음식 만드는 데는 제로거든요. 저 아무 것도 할 줄 몰라요. 설이가 주로 하는데, 설이도 바빠서 거의 사 먹는데. 사 먹는 것도 물리네요.”
   “그럼, 그럼. 사 먹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어떻게 사시사철 사 먹어. 얼른 식기 전에 들어. 얘들아, 먹자!” 운서가 아이들을 독려했다.
그제서야 킴벌리 챌리 설이가 부산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때까지 수저를 쥔 채 두 여인네를 구경하며 그들의 대화를 듣던 운진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눈이 숙희에게 가서 굳으려는 것과 씨름하고 있었다.
운서가 말했다. “가게는 다 끝나가?”
   “아까 갔더니 인스펙숀까지 받았더라구요?”
   “그럼, 낼 당장이라도 오픈해도 되겠네?”
   "누님이 할려우?"
   "내가 캐리아웃을 아니?"
킴벌리와 챌리가 김치찌게를 떠서 밥에 얹어 먹으며 귓속 말로 저들끼리 연신 뭐라고 숙덕거렸다.
   “매우니? 응?” 운서가 찌게를 한숟갈 떠 먹었다.
   “No, it’s good, go-mo! (아니, 좋아요, 고모!)” 킴벌리가 말했다.
그 때 마잌이 들어섰다. “Sorry, I’m late! (늦어서 미안해요!)”
숙희가 마잌에게 손을 흔들어줬다.
   “하이, 아줌마!” 
   마잌이 몹시 반가운 표정을 하고 다가왔다. "하우 아 유?"
숙희는 마잌하고 악수를 했다. “너 많이 컸구나, 그 새?” 
   “네! 엄마, 나 밥 이서?” 
   마잌이 킴벌리와 챌리에게 손을 흔들었다. "워 썹, 걸즈?"
킴벌리가 마잌에게 손가락 욕을 했다. “Did you wreck your car today? (네 차 오늘 박았어?)”
   “Not today! But that was good one though. (오늘은 아냐! 그러나 그거 아주 좋은 농담이야.)” 
마잌이 킴벌리를 손가락짓으로 위협했다.
운서가 밥을 한 공기 가져와 운진의 옆자리에 놓았다. 
마잌이 외삼촌 운진에게 하이! 하고는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운진은 조카 마잌에게 고개를 끄떡해 보였다.
숙희는 그러한 움직임들을 아주 흥미롭게 지켜봤다. 
여섯명의 사람들이 아무리 친척이지만 너무도 정답고 자연스레 어울리는 모습들이 숙희에게는 생소했다. 혼자만 살아 온 그녀로서는 곁에 사람이 있으면 거북하고 거추장스러웠다. 
그런데 이 집에서는 그런 느낌이 안 들었다. 
오히려 아이들이 서로 던지고 받는 농들이 재미있고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어쩌다 서로 보고 조용히 하라고 닥치라고 언성을 높여도 운진은 구경만 할 뿐 전혀 나무라지 않았다. 
그래도 아이들이 은근히 운진의 눈치를 살폈다.
식탁 위에서 여러 사람들이 내는 그런 소리가 숙희로 하여금 식욕을 돋구게 했다. 
킴벌리가 밥을 단숨에 비우고 물도 비우고 일어섰다. “Thanks, go-mo!”
챌리도 다 비우고 일어섰다. “고모, 잘 먹었읍니다!”
   “응, 그래, 그래.” 운서는 정말 기특들 하다는 듯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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