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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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8. 22. 04:37

   운진은 무식하게 보이도록 와인을 단숨에 비웠다. 
   '쪼매만해도 당신보다 컸겠다!' 
   맛은 없고 달기만한 와인은 끈끈한 느낌을 남기며 목을 타고 내려갔다. 포도색 물에 알콜을 탄 듯한 가짜 와인 같았다. 
바가지 아닌가, 혹시...
정 여사는 눈을 내리깔고 와인을 조금씩 음미하고 있었다. 그녀의 낮게 뜬 눈이 마치 웃는 듯했다. 아마도 와인을  물 마시듯 해치워 버린 그를 비웃는 모양이었다. 
운진은 그걸 바랬다. 
그녀가 운진을 얕보거나 무식하다고 무시해 주길 바랬다. 그는 무식하게 트림까지 했다. 
이제 그녀는 민망해서라도 일어날 것이다. 그런데 그녀가 전혀 그런 기색을 안 하고 와인을 입술에 적셔 맛을 보며 글래스를 내려놓았다. “싱겁네요?”
운진은 눈만 내리떠서 빈 글래스를 봤다. ‘와인이 싱겁다는 사람은 첨 보네, 또.’
   그나저나 잠자리도 형편없는 이 여자를 어떻게 떼어버리나. 무슨 여자가 씻지도 않나, 냄새는 우라지게 나고... 꼴에 어울리지도 않는 체위를 하자 하고... 아무래도 노트를 꺼내서 담판을 지어야겠군.
   “이런 데서는 아무래도 이름도 없는 아주 싸구려를 팔겠죠. 그래야 많이 남으니까. 우리 다음에 말예요, 고급 와인만 전문으로 취급하는 데로 제가 모실께요. 와인은 역시 프랭스 와인을 최고로 치잖아요.” 
그녀가 와인잔을 한쪽으로 치웠다.
운진은 그 잔을 내려다보며 속으로 정 여사가 한 말을 되씹었다.
   ‘프랭스? 불란서도 아니고 프랑스도 아니고 프랭스라 하나? 프렌취 와인이지. 되게 아니꼽네, 씨발.’
마침 운진의 셀폰이 울었다. 
운진은 스크린을 들여다보고는 드디어 연락 올 것이 왔구나 하며 얼른 대답했다. “헤이, 킴?”
   “Dad! Where are you? (아빠! 어디 있어?)” 킴벌리가 소리부터 질렀다.
   “응, 아빠, 손님이랑 다이너에 있는데?”
   “Where? (어디?)”
   “The Diner. Across from the store. (다이너. 가게 건너편에)”
   “Who’s with you? (누가 같이 있는데?)”
   “A customer. (어떤 손님.)” 
   “Can I go with you, too? I’m hungry! (나도 가도 돼? 나 배고파!)”
운진은 정 여사를 잠깐 살펴봤다. ‘그래도 될까, 애들이?’
그 때 주문한 음식들이 한꺼번에 날라져 왔다. 
   ‘에잇, 씨팔! 늦었네!’ 
운진은 속으로 혀를 찼다. ‘음식만 안 나왔어도 어떻게 핑게를 대어 빠져나가 보겠는데, 틀렸네! 애가 배가 몹시 고픈 모양인데. 오라 해도 안 올 거고, 오면 곤란하고.’ 
정 여사가 음식들을 정리했다.
운진은 전화기를 귀에서 떼고 정여사를 봤다. "이거 죄송해서 어떡하죠? 애들이 저녁 때문에 가게에서 날 찾는 모양이군요."
   "왜요? 누군데요?" 정 여사가 조금 샐죽했다.
운진은 얼른 일어섰다. "I'm coming over! Okay? (나 금방 간다! 오케이?)"
그 여인이 뭐라 할 틈이 없었다.
   "계산은 나가면서 하겠습니다."

   아빠 운진이 가게로 오니 제일 먼저 킴벌리가 물었다. “Who is she? (그녀는 누구야?)”
아마도 본 모양이었다.
챌리가 말을 받았다. “I think I know her. (나 그녀를 알 것 같아.)”
   “You do? (그래?)” 운진은 큰애에게 물었다.
   “Mom used to meet her at Korean restaurants or at golf course before she died. (엄마가 죽기 전에 그녀를 한국 식당들이나 골프장에서 만나곤 했어.)”
   “Really? (정말?)” 
킴벌리가 큰 소리로 반문하며 아빠를 봤다.
운진은 처음 듣는 소리지만 일단은 관심없어 하는 투로 '그래애?' 했다.
   그렇다면 죽은 그 사람이 골프 선생새끼하고 어울린 배경에 저 여편네가 있었을 지도 모르지?
   저 여자를 통해서 골프 선생인가 그 도망간 새끼를 찾을 수 있겠다! 
영호 보고 조가한테서 돈 받아 가지라고 하면 말을 듣겠지? 
다 끼리끼리구만! 그 나물에 그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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