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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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8. 23. 04:56

   형록이 모친상을 당해 하는 수 없이 캐리아웃을 닫았다. 
영호가 대신 오겠다 했지만 영아와 형록이 일어지하에 거절하고 초상 치르러 갔다. 
영아가 예쁜 영어 필체로 가족 중에 상을 당해 며칠 닫는다고 써붙이는 걸 잊지 않았다. 
운진은 그 글씨를 아침 저녁으로 보고 읽었다.

   정 여사가 오겠다는 날도 아닌데 연락도 없이 운진의 가게로 찾아왔다. 
   “옆의 가게가 닫혔네요? 뭔 일이 있어요?” 그녀가 가게로 들어서며 물었다.
운진은 마악 배달된 물건들을 세어보고 있다가 그녀를 봤다. “아, 녜. 집안에 일이... 좀 생겼어요.”      
   “예? 아이고, 그럼, 오 선생님 처갓 집에 일이 또 생겼단 말예요?”
   “아뇨. 남자네 집에...” 
운진은 종업원 청년에게 치우라고 신호하고 카운터로 갔다. ‘내 처갓집에?’ 
그는 정 여사가 역시 뭔가 많이 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정 여사가 운진을 따라 들어와 구석에 놓인 의자에 걸터앉았다. 
마침 한가한 시간이라 운진은 달리 할 일도 없고 해서 어색한 분위기를 다스릴 겸 정 여사를 마주했다. “뭣 좀 드릴까요? 대낮부터 술은 안 되겠고. 술가게라 드릴 게 없네요.”
   “네? 아유, 우스워라. 오 선생님이 농담도 다 하시구? 호호호!” 그녀가 입을 가리고 웃었다. 
이날 따라 그녀에게서 꽃 종류의 향수 냄새가 더욱 진동했다. 
운진이 아주 질색하는 향수.
그 새 종업원 청년이 배달된 물건들을 다아 치우고 창고에서 나왔다.
   “저 총각은 일 잘 해요?” 정여사가 물었다.
   “예. 근데, 곧 그만 둡니다.”
   “아유, 아무데서나 진득하게 못 하고. 젊은애들을 쓰면 그게 참 말썽이예요. 꼭 그래요. 쓸 만하면 나가고, 쓸 만하면 나가고. 네?”
운진은 대답 대신 고개를 대강 끄떡였다. ‘그게 아닌데, 지멋대로 혼자 주워대기는!’
청년이 카운터로 들어서는 참에 운진은 뒷방으로 가려고 몸을 움직였다. 
   “야, 도움 필요하면 불러라?” 
하는 말을 운진은 일부러 좀 거들먹거리며 말했다.
청년이 고개를 크게 끄떡였다.
정 여사가 운진의 뒤를 따라 방으로 들어섰다.
운진은 손으로 의자를 가리켜 그녀를 앉게 하고, 그는 책상에 걸터앉았다. 
   “오늘이 이잣날인가요?” 그는 벽에 붙은 달력을 들여다봤다. 
   “왜요, 전 이잣날 아니면 못 오나 보죠?”
   “아뇨. 전 제가 혹시나 잊었나 해서...” 
정 여사가 새삼스럽게 비싸보이는 핸드백을 고쳐 잡았다. “오늘은 이자 보다도 오 선생님하고 긴히 으논 드릴 일이 있어서 잠깐 들렸어요.”
   “저랑요? 뭔데요?”
   “다른 게 아니고, 우리 비지네스 하나 같이 해요.”
   “녜? 아이고, 전 이거 하나도 절절매는데, 또 다른 비지네스요?”
   “그러니까, 이 가게하고 제 가게하고 합쳐서 팔고 더 큰 걸 하자는 말이죠. 둘 다 팔아서 돈을 모아 아주 큰 비지네스를 벌리는 거예요.”
   “녜에?” 
   운진은 그녀를 창피주기 위해 억지로 놀라고 어림도 없다는 반문을 했다.
영아가 장부에서 찾아준 바에 의하면 정 여사가 죽은 영란에게 줄 돈 금액이 9 만불이다.
운진은 그 사진 사본을 미리 준비해 놓은 곳에서 찾아냈다. "혹 이거에 대해서 아세요?"
   "이게 뭐죠?" 정 여사가 눈이 잘 안 보이는 척 꿈뻑거리며 종이를 받았다.
   "우리 집사람한테 빚을 지셨더군요?"
   "누가요? 내가요?"
   "거기 사인만 하신 수표 카피 보이시죠?"
   "내가 요즘 시력이 나빠져서..." 
운진은 영아가 찾아준 사진 한장을 정 여사에게 보여주었다. "요즘도 이 사람하고 골프 치십니까?"
   "누, 구, 죠?"
정 여사가 갑자기 장님이라도 된 양 앞을 더듬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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