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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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8. 22. 04:33

   잠시 후 설이의 데이트가 큰 버켓의 팦콘과 마실 것 세개를 컵들이에 들고 돌아왔다.
설이가 땡쓰 하고 팦콘 버켓은 가운데 앉은 제 무릎 위에 놓고 마실 것을 공중에 쳐들어 무슨 종류인가 식별하고는 각자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남자는 제가 사 와  놓고도 설이가 나눠주는 대로 받았다.
그런 게 숙희에게는 생소했다. 
   과거에 운진과 데이트할 때는 그가 주로 궂은 일을 하고 숙희는 가만히 앉아서 받기만 했다. 
숙희가 지금 곁눈으로 지켜보니 설이가 팦콘도 한주먹씩 집어서 남자의 입에다가 대 주었다. 그러면 남자는 팦콘을 받아먹으며 때로는 설이의 손가락을 무는 시늉을 했다. 
그러면 설이가 아이이! 하고 놀라는 시늉을 하고, 둘은 키득키득 웃었다. 
그 새 둘 사이에 진도가 많이 나간 모양이었다.
숙희는 평소에 사근사근한 설이를 잘 아는 고로 남친에게도 그러는구나  했다.
   영화가 시작하며 불이 나갔다. 
그러자 설이가 팦콘을 무릎에 놓고 안은 채 남자에게 머리를 기댔다. 
남자가 숙희를 행여 건드리나 조심히 보며 팔을 돌려 설이를 감싸 안았다. 
숙희는 눈을 앞에다 두었지만 그들의 움직임이 그녀의 눈가에 들어왔다.
   예전에 극장에서 운진이 팔을 돌려 그녀의 어깨를 안으려다가 그녀가 쳐다보자 그가 팔을 얼른 치운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로 둘은 극장을 별로 찾지 않은 것 같았고. 또 그가 다시는 어깨를 안는다는지 하는 동작을 아예 시도도 하지 않은 것 같았다. 
사람들이 우스운 장면에서는 까르르 웃었다. 
설이가 때로는 남자의 팔을 때리며 웃기도 했다. 
남자도 화면을 열심히 보며 웃는데 때로는 설이의 머리에 입을 맞추고 그러면 설이가 남자를 올려다보곤 했다. 둘이 키쓰를 하고 싶은데 숙희가 마침 옆에 앉았으니 주저하는 기색이 완연했다.
숙희는 될 수 있으면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음으로써 그들이 안 보인다는 듯이 애썼다.
   관객들은 자주 웃어댔다. 
그런데 숙희는 하나도 우습지가 않았다. 
숙희만 똑똑하고 나머지 이백여명이 다 바보이면 몰라도 웃는 그들이 이상하기 보다는 웃을 줄 모르는 자신의 문젯점을 그녀는 비로소 깨달았다. 
   남자배우가 발음을 이상하게 한다든지 여자가 발이 물에 빠진다든지 하면 관객들은 아하하하! 하고 웃었다. 차가 앞으로 가는 대신 뒤로 나가 다른 차를 박았는데 관객들이 배꼽을 쥐고 웃었다. 
운전석에 탄 남자 배우는 앞을 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운전자는 차가 앞으로 갈 줄 알고 앞만 보고 있는데 정작 차는 기어를 잘못 넣어 뒤로 가서 남의 차를 박았고, 하필 그 받힌 차가 경찰차였다. 
관객들이 숫제 넘어갔다. 
그리고 그 경찰은 마침 다른 차에 딱지를 끊는 중이었고, 경찰이 고개를 아주 천천히 돌려 앞을 보니 역시 관객들이 넘어갔다. 
경찰차를 박은 운전자가 아주 미안하다는 연기를 하는데 이를 내보였다. 
극장 안이 웃음소리로 떠나가고 설이와 남자가 하하하하! 하고 숫제 바닥으로 떨어져 구르려했다. 
숙희는 영화의 내용보다는 아무 꾸밈없이 웃어대는 설이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난 저 나이 때 저렇게 웃어보지를 못 했는데...’
숙희에게는 사람들이 스크린을 보며 배꼽을 잡는다는 자체가 가여웠었다.
그러나 이제는 숙희 그녀도 웃고 싶다. 
웃을 줄만 안다면...
   그녀는 기억할 수 있는 어린 시절부터 웃는 것을 몰랐다. 
그녀는 그저 운 기억만 있다.
과거 그녀가 아는 오운진은 잘 웃던 남자였다. 그는 다른 이들과 얘기할 때 큰 소리로 떠들고 소리 크게 내어 웃던 남자였다. 그랬던 그에게서 웃음을 빼앗아 간 이가 그녀였다.
그렇다고 그녀는 그의 웃음을 갖지도 않았다.
그녀는 그에게서 웃음을 죽게 만들었으며 그녀는 웃지도 않았다. 그녀가 웃을 때가 있었다면 아마 그것은 약에 취해서 해롱댈 때였을 것이다. 약에 취했을 때 웃는 것은 웃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녀가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자신을 보고 웃은 울음이었을 것이다.
   이제 영화에서 남자는 여자와 헤어진 후 웃음을 잃었다. 영화의 남자는 점점 난폭해져 갔으며 술을 이기지 못할 정도로 마시곤 했다. 그는 좋아하지 않지만 그를 사랑한다는 여자와 결혼하고 애도 낳았다.
그는 묵묵히 가족 먹여 살리는 일에 충실할 뿐이었다.
숙희는 그 영화를 더 이상 볼 수가 없었다.
   관객들은 조용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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