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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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8. 22. 04:34

   밤 늦은 시간인데도 다이너는 젊은이들로 메워지다시피 꽉 찼다. 
하이스쿨 다닐 만한 무리가 한자리를 차지했는데, 한 소녀가 셀폰에다 통사정을 하고 있었다. 
   “Mom! I will! Please? We are in Diner now. Yes, mom! Okay! Bye! Love you! (엄마! 할께! 제발? 우리 다이너에 있어. 응, 엄마! 알았어. 빠이! 사랑해!)” 
   그 소녀가 셀폰을 접고는 쉬시! 하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I gotta get home by midnight. Or My mom’s going to ground me! (나 자정까지 집에 가야 해. 아니면 엄마가 날 그라운드 시킬 거야!)”
일행들이 오오! 하고 동정의 신음을 냈다. 
한 소년이 의자에서 몸을 반쯤 일으키며 손을 흔들어 웨이추레스의 주목을 일으켰다.     
   “Excuse me! Can we get something to eat fast? She has to get home by midnight, please? (실례합니다! 우리 주문 좀 빨리 할 수있어요? 그녀는 자정까지 집에 가야 해요, 네?)” 
그 소년이 그 소녀를 가리켰다.
웨이추레스가 그들에게 다가갔다. 
곧 이어 거기에 앉은 아이들이 부지런히 주문하는 말들이 들렸다. 
숙희는 메뉴를 보며 그러한 소동을 귓전으로 들었다. 
만약에 자신이 밤늦게까지 나돌아 다니는 딸아이가 있었다면 과연 벌 준다는 위협 정도로 허락을 했을까 하고 생각해 봤다. 결혼도 안 해 본 처지에 그런 상상은 도저히 감이 안 잡혔지만 모르긴 몰라도 그녀 자신은 전혀 용납을 못 할 것 같았다. 
   집안에서 결혼을 반대하는 남자를 계속 만난다고 딸을 집에서 내쫓는 엄마에 대한 반항으로 그 나이가 되도록 방탕한 생활을 살아온 자신이 딸의 밤늦은 외출을 허락할 리는 만무였다. 
   ‘절대로 안 되지, 암!’
숙희는 메뉴를 내리고 설이를 봤다. “너두 밤늦게 나 다녔었니?”
남자와 머리를 맞댄채 메뉴를 들여다 보고 있던 설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너두 엄마한테 그라운드 맞아 봤어?”
   “아아. 네. 엄만 늘 못 나가게 했어요.”
   “그럼, 친구도 못 만나봤겠네?”
   “삼춘이 허락했죠. 삼춘이 어쩌다 오면 엄마한테 막 뭐라 했어요. 뭐랬더라... 아! 자기 맘 짚어서 남의 맘 안다고, 엄마가 불순했으니까 딸도 의심한다고 막 뭐라 했어요.”           
숙희는 전혀 꺼리낌없이 말하는 설이가 부러웠다.
   "삼춘은... 챌리랑 킴벌리에게도 그랬어요."
   "..."
   "챌리랑 킴벌리가 외숙모한테 말했다고, 슬맆오버 가면 암말 안 했어요."
   "..."
   "그리고 챌리랑 킴벌리 그라운드는 외숙모가 했어요."
   "..." 
웨이추레스가 그들의 테이블로 다가왔다.
숙희는 주문과 전혀 상관도 없는 질문을 했다. 
   “Do you have customers come in all night long? (손님들이 밤새도록 들어와요?)”
   “Of course! Until 4, 5 a. m. then breakfast customers start coming in. (물론이죠! 새벽 네시 다섯시까지 그런 다음엔 아침 손님들이 들어오기 시작하죠.)”
   그 백인 여인은 눈을 위로 치켜뜨고 고개를 잘래잘래 저었다. 
그리고 그녀가 일동을 향했다. "Are you ready?"
숙희는 메뉴로 눈을 돌렸다. 
그라운드(ground)라는 말이 새삼스러웠다
그리고 그라운드 시킨다고 겁을 내고 퐁당퐁당 뛰는 청소년들이 외계인들처럼 보였다.
   너 자정까지 안 들어가면 그라운드 당하냐 그러면 너 먼저 얼른 가라가 아니고 다들 빨리 먹을 수 있도록 한 소년은 실례를 무릅쓰고 웨이추레쓰를 불렀다.  
   '엄마가 나를 차라리 그라운드 시켰더라면, 훨씬 달라질 수 있었겠나?'
그러니까 계모이지만 의붓딸을 밖에 못 나가도록 했다면 인생이 달라졌을까 궁금한 것이다.
그랬다면 그녀는 은행을 계속 나갔을까. 
그녀의 인생을 백팔십도 바꿔버린 그 주피터 은행을.
그리고 그녀는 오운진이란 사내를 접촉하려고 온갖 꾀를 내고 애썼을까.
그녀가 그랬다면 그는 그녀를 구출해 주기 위해 온갖 노력을 했을까.
   숙희는 갑자기 설이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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