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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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8. 24. 05:34

   차를 가지고 온 챌리의 남자친구가 동양여자들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 하지만 분위기로 대충 알아차리고 돌아가려 했다. 
숙희가 둘을 세우고 챌리에게 말했다.
   “서구사람들, 특히 뉴 잉글랜드 쪽 사람들은 자기네 전통을 꼭 지킨다. 그들은 영국 후손들이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다른 종족을 영입하지 않는데, 그래도 네가 아주 뛰어나고 장래가 보이니까 받아들이려 했다가 네가 홀아비하고 사니까 그걸 우려해서 조용히 끊었어. 이제 누가 와서 집안꼴이 되어가니까 다시 찾아왔는데, 그게 뭐가 그리 나빠? 너 남자친구랑 헤어지고는 머리 싸매고 누웠었잖아. 차도 네가 자청해서 보냈대매? 왜 그랬어? 그건 자격지심이야. 너도 사과하고 받아들여!”
숙희가 명령쪼로 타이르고 챌리가 울면서 남자친구와 포옹했다. 
자연 둘의 교제가 다시 약속되었다. 
   알고 보니 남자측네 재력과 권력이 보통 탄탄한 집안이 아니었다. 

   숙희는 정식으로 면사포를 쓰고 예식을 올리기를 희망했다. 
   “저로서는 초혼이니까, 정식으로 하고 싶어요.”
그녀의 말이 곧 명령이었다.
운진은 그저 고개만 주억거렸다. "그러시죠."
운진은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 수모를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다. 
   아주 아주 오래 전에 막판으로 결혼을 허락해 달라 하려고 숙희의 집을 찾아갔었다. 먼 발치서 그녀의 차가 없음을 확인하고 차라리 잘됐다 싶어 그 집 벨을 눌렀다. 
문이 열리는가 싶게 미처 말을 꺼내기도 전 그는 물벼락을 맞았다.
   “이놈이 예가 어디라고!” 
물을 훔치면서 돌아서는 그의 귀에 들린 그녀의 모친의 목쉰 음성이었다...
   숙희도 운진의 부친이 간곡히 부탁하던 것을 잊지 못 한다.
   "우리 운진이가 어려서부터 누나의 영향을 많이 받아 여성 같아요. 마음이 여리고 잘 삐치고 수줍어 하고... 아가씨가 다행히 씩씩하니까, 우리 운진이를 잘 리드해서 머리는 좋으니까 사람으로, 즉 남자로 구실하도록 좀..."
그러나 그의 모친이 물벼락은 안 내렸지만 그 에미에 그 년이라고 욕을 해댔다...
   "그래서 우리는 바보같이 22년을 떨어져 살다가 이제서야 만났잖아요?" 
숙희가 새삼스럽게 악수를 청했다.
운진은 숙희의 그 큰 손을 공손히 잡았다.
챌리의 말이 들렸다. “Be good! Or, she’s gonna kick your butt with her karate, dad. (잘 해! 아니면, 그녀가 아빠를 가라데로 혼낼 거야, 아빠.)”
   “태권도.” 
숙희의 정정하는 말을 들으며 운진은 저도 모르게 굽실했다. "배신자딸!"
챌리가 그 말뜻을 못 알아듣고 쑤아줌마를 쳐다봤다.
   "Ignore! 못 들은 척 해."
쑤 아줌마의 그 말에 챌리가 아빠에게 혀를 쏙 내밀어 보였다.

   집을 팔고, 가게들도 매각하고, 숙희가 돈을 갈라서 영아에게 한몫, 영호에게 한몫, 운서언니에게 한몫 그렇게 주고는 바이 바이를 선언한 것을 놓고 운진이 한마디 했다. 
   "그거 혼자 사는 분들의 특징이던데요. 남들이, 심지어 가족도 곁에 있는 걸 싫어하는 경향이 있던데. 그래서 혼자 사는 건지 혼자 살다 보니 그렇게 변한 건지..." 
운진은 제 딴에는 예전부터 생각해 온 것을 그대로 말했다.
숙희가 다르게 받았다.
   "쓸데없는 오지랍이란 말 들어보셨어요?"
   "헤헤헤. 오지랍을 그런 데다 쓰는 게 아닌데."
   "그 사람들을 주위에 남겨 놓으면, 운진씨 폴 볼 때마다 영아씨 그리워 할 거고. 옛날 처남 보면 죽은 부인 생각날 거고. 운서언니는 멀리 떼어 놓아야 설이가 행복하게 살아요."
   "희한하네..."
   "뭐가요, 또!" 
   숙희가 발을 들었다가 내렸다. "이젠 잘 안 되네..."
   "나까지 덩달아 고립시키고 뭘 얻으시려고요?"
   "그래야 제 말을 잘 듣겠죠?"
   "그런다고..."
운진은 말하다 말고 숙희의 발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 뒷걸음질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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